설교

욥기강해 (9) 욥기 28장

따뜻한 진리 2021. 6. 27. 21:21

욥기 28:1-2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부모, 친구, 스승, 책, 경험 등에서 지혜를 배웁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 해결과 이익을 위해 그런 쓸모 있는 지혜를 받아들이고 따릅니다. 지혜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인생의 의문들과 고민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성경은 세상 사람들도 유용하다고 말할만한 그런 지혜도 말하지만 세상이 결코 동의하지 못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도 갖지 않는 숨겨진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욥의 친구들은 세상이 납득할 실용적 지혜만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말한 지혜는 사람이 충분히 이해하고, 또 이용할 수 있는 인과응보를 아는 지혜, 죄를 심판하시고 선을 장려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지혜로 욥이 겪는 고난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들의 지혜가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붙잡은 지혜는 욥이 자신의 고난을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지혜가 되지 못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그런 지혜만으로 세상을 운영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물론 친구들의 지혜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세상에서 대부분 유효한 지혜, 따라야 하는 지혜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도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 이유 없는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지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들이 놓친 지혜가 어떤 것인지 살짝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보석들보다 귀하지만 정작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감추어져 있는 지혜, 인간들이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인간들이 그런 지혜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반대로 인간들이 찾으려고 애쓰는 것을 먼저 말합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놀라운 기술을 사용해 땅 끝까지 찾아갑니다, 보석과 희귀한 물질을 얻으려고 깊은 땅 속까지 용감하게 파헤치고 위험한 곳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이해하기도 어려운 고도의 기술을 이용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을 치르면서도 우주까지 갑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자신합니다. 그렇게 인간은 보석과 자원과 필요한 정보를 가지려고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인간보다 뛰어난 시력을 가진 독수리와 예리한 본능을 가진 사자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보물을 인간이 찾아냅니다. 인간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전투적인 개척을 하지만 진정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수고를 하고 있는지 본문이 묻습니다.

 

    우리 시대와 비교한다면 욥의 시대는 원시 시대처럼 여길만한 환경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때 없었던 수많은 첨단 기기들을 사용하고, 그것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엄청난 계산 속도를 가진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미래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욥의 때와 크게 다른 것이 없는 것은 삶과 고통에 대해 답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이런 일로 힘들어 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식과 술과 예술과 쾌락으로 삶과 고통을 나름 미화하고 위로하는 기술은 있지만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문제에 대해 진실하게 설명해낼 수 있는 지혜는 여전히 찾지 못합니다.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답이 있는데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금, 은, 보석은 찾을 줄 알고, 하루아침에 잃을 위험이 있는 투자대상에 재산을 걸을 줄은 알지만 답이신 하나님, 참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을 찾을 줄 모릅니다. 모든 사람은 그 답이시고 지혜이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본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당한 고난을 당하는 욥에게만 그 숨겨진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이유, 이유 없는 고난이 어떤 유익이 있는지에 대해 십자가가 설명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 지혜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보석이 감추어진 어떤 밭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그 보석이 있는 밭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려하듯 우리는 지혜를 찾고 소유해야 합니다. 이 지혜를 만난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것은 욥의 친구들의 주장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본문이 말한 것은 도덕과 경건이라는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이 의도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혜는 하나님께만 속했으니 이 세상이 우리의 생각, 우리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존하는 믿음을 가져야 함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경한 삶, 부도덕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이 세상의 모습과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원망합니다. 그런 다음 자기가 가진 지혜보다 어리석은 삶을 삽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러이러한 이상적인 모습들이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분명해!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야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판단할 때 자신이 사용한 그 지혜의 기준대로 그 자신이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악한 것에 타협하는 간사한 지혜에 굴복합니다. 그래서 악인들과 기회주의자들이 잘 되고 악을 저질러도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을 보면서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을 어리석게 여기고 악인의 길에 서고, 악인의 자리에 앉습니다. 세상은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지혜이신 하나님을 부정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가립니다. 로마서 1장 18절이 말하듯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에게서 달아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인되심과 사람의 죄인됨을 우리가 깨닫고 십자가 앞에 나오도록 피조세계와 사회에 장치들을 만드셨는데 인간은 그것들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의 흔적과 지혜를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유전자를 질병에 강하도록 조작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제도와 가정을 해체하고, 간음을 더 이상 죄라 하지 않고, 사형제도를 없애고, 죄를 정당하게 처벌하기보다 인권을 높이고, 채식을 하는 자신이 엄청난 지구 사랑과 생명 사랑을 실천한다고 자만합니다. 육식을 허용하셔서 인간의 생명 때문에 피 흘려야 하는 짐승들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비웃는 것입니다. 결혼과 가정을 파괴해서 의무와 죄책감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죄로 인한 비참한 현실을 계속 직면하게 만드는 장치들을 회피하고 없애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우리가 더 지혜롭고, 더 생명을 사랑한다고, 더 평화로울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외면하려는 방법들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보다 인간의 선행과 도전과 변화가 희망이고 지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보다 인간이 더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참된 지혜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본문 28절이 말하는대로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에 따르면 신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자가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의로운 욥에게 무고한 고통이 나타났습니다. 또 세상의 지혜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고 지혜로운 분이라면 사탄이 악한 일들을 벌이기 전에 하나님이 제압하시고, 악을 없애셔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힘으로 파괴하고 부수는 방법이 아니라 악을 겪고 씨름하면서 자신의 선함과 능력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한방에 대응하시기보다 희생을 각오하는 허용을 통해 수고와 고통을 겪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고 연약한 것을 통해 승리를 얻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기 쉬운 인간들을 통해, 또 아들을 인간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는 연약한 방법으로 일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탄은 그런 하나님의 지혜를 무효로 만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탁월하다는 것이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 욥에게는 그런 지혜가 자기에게 나타나길 바랐습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면 도저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고, 옳은 과정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기꺼이 현재를 인내하도록 도와주는 지혜가 욥에게 주어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욥기 마지막에 그 지혜이신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판단하는 지혜가 아닌 양이 목자를 신뢰하고 따라가는 것과 같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생스런 골짜기를 지나가게 하는 목자의 인도가 이해가지 않지만 그를 신뢰하고 따르는 양들이 좋은 꼴을 얻게 되고 쉼을 얻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이 사람이 순종해야 할 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지혜인 것처럼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으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가리려고 하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해결되는 구원의 방법일 뿐 아니라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순종의 모범을 예수님이 보여주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사탄을 이기고 우리를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또 십자가는 피조물인 우리가 영광스러워지려면 우리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시는 것으로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높아지셨습니다. 세상의 지혜로 우리가 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나타난 지혜로 진정한 복을 얻습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욥은 그런 지혜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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