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가복음 강해 (11) 누가복음 8:4-21

따뜻한 진리 2021. 10. 10. 18:28

누가복음 8:4-2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은 자기 앞에 나온 많은 사람들 앞에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제목을 흔히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말하지만 네 가지 땅의 비유라고 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 비유에서 배경이 되는 농부가 씨 뿌리는 방법은 씨앗을 밭에 흩어 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내기하는 장면에서 보는 것처럼 어느 정도 자란 벼를 논에 줄을 맞춰 가지런히 옮겨심기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 아니라 씨를 그냥 고루 흩어지게 뿌리는 방법으로 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사시던 유대지역의 파종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일한 씨앗을 밭에 뿌려도 어떤 씨는 길가와 돌과 가시떨기에도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인데 길에 떨어진 씨앗을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는 것은 마귀가 그 복음을 들은 자가 구원 얻지 못하도록 마음에서 그 말씀을 빼앗아버린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씨앗이 바위에 떨어진 것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기뻐했지만 어려움이 생기면 믿음을 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씨앗이 가시떨기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에서 즐기던 것들의 유혹에 마음을 다시 뺏겨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뢰하고 인내하면서 열매 맺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 복음을 듣는 자들이 많지만 반응은 다릅니다. 모두가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좋은 결과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분명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늘로부터 오는 변화를 경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숨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는 자에게나 미워하는 자에게나 모두에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능력이 드러났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들 역시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자는 열매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빛이 숨겨질 수 없듯이 사람들은 예수 믿는 자를 알아채게 됩니다.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면 열매를 내듯, 열매를 보고 어떤 나무인 줄 당연히 알듯이 예수를 진정 자신의 주인으로 믿는 자는 예수님을 닮아 자신이 예수에게 속한 자임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을 보면 예수님은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마침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근처에 와서 자신을 만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예수님은 자신의 진정한 가족은 자신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며 순종하는 것이 진정 예수님과 한 가족이 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반응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사건들을 통해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바른 반응을 하려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사람과 세상의 문제를 잘 알고 계시고, 해결방법과 능력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문제와 세상의 문제를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해서 자기만의 해결방법을 정해두고 예수님에게는 도움과 능력을 제공받길 원합니다. 마치 나한테 좋은 기술이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그 일을 시작할 돈이 없어서 투자할 사람을 찾는 것처럼 예수님을 투자자, 참여자 정도로 생각하면서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이런 문제, 세상의 이런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만 해주면 되고 나머지는 자기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수님이 자기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나 죄의 용서를 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매력을 느껴 즐거워하다가도 자기가 기대한 대로 삶이 안 풀리면 신앙을 버립니다. 또 예수님을 환영하고 능력도 체험해서 좋아했지만 세상의 화려한 것을 즐기는 것과 자기 성취와 만족을 즐길 여유가 생기면 더 이상 예수만을 붙잡는 것을 답답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면서 떠나는 것입니다. 마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얼마 가지 않을 감정에만 의지해서 결혼했다가 헤어지는, 자기가 상대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인간의 사랑이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무지한 자, 사랑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자, 그러면서도 사랑을 배우지 않으려는 완고한 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처럼 예수를 버리고 갑니다. 또 이미 마음은 떠났지만 헤어지지 못하고 억지로 유지하는 관계들이 있는 것처럼 예수를 그런 식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길가에, 바위 위에,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와 같습니다. 예수님에게 인격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고, 잠깐 믿는 것 같다가 자기 이익과 즐거움을 아쉬워하며 이전의 삶으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또 손해와 고난이 생기는 것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여자에 대해 “사랑이 많음이라”라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하신 대로 예수를 믿는 것은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진정 나를 사랑하시는 분을 만나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모든 희생과 고통을 감당하신 것처럼 나도 고통을 인내하면서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의 사랑이 감추어질 수 없었던 것처럼, 빛이 감출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반응하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감출 수 없는 변화를 드러냅니다. 열매를 보입니다. 인간들에게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사랑, 또 혼자 품는 짝사랑마저 그 사람의 표정과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듯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분명히 변하게 만듭니다.

 

    순종과 변화라는 행함의 열매가 구원을 가져오는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는 분명 행함의 열매를 보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얻는 것이지만 그 구원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우리도 사랑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의 영원한 관계를 만듭니다. 어려움과 유혹이 와도 끝까지 주님과의 관계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자신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받고, 행위로 예수님의 가족.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인인 나를 용서하시고 자녀로, 가족으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한 자는 하나님 나라 가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누릴 뿐 아니라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나의 가족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 때문에 한 가족인 것을 드러내는 이런 상호적인 차원에서 행함과 가족됨을 연결시키신 것인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적 가족이 우리의 선택과 행위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출생으로 이뤄진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가족은 거듭남이라는 새로운 출생의 은혜로 맺어집니다. 진정한 가족이라면 자신의 헌신과 사랑을 자기 공로로 여겨 가족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위해 순종하고, 같은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있는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