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가복음 강해 (12) 누가복음 8:22-56

따뜻한 진리 2021. 10. 17. 21:02

누가복음 8:22-56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이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이 드셨을 때 풍랑이 일어 배가 흔들리고 물이 들어왔습니다. 제자들은 죽을까봐 두려워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이 깨셔서 바람과 물결에게 명령하시자 호수는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 물으셨습니다. “너희들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제자들은 놀람과 두려움으로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신대로 순종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서로 했는데 누가는 마치 이 질문에 대답하듯 예수님의 다른 이적들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거라사 지역에 도착했을 때 여러 귀신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던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군대라는 이름의 그 귀신들은 이미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악한 것들을 멸망시킬 것, 즉 자신들을 지옥으로 보내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했고, 제발 자신들을 지옥을 의미하는 지하 무저갱으로 보내지 말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귀신들을 근처에 있던 돼지들에게 가도록 허락하셨지만 그 돼지들은 귀신들이 들어가자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귀신들렸던 자가 어떻게 치유되어 구원받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돼지 떼를 잃은 것처럼 자신들의 재산에 손해가 더 일어날까봐 예수님을 떠나시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렸다가 구원받은 자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행하신 일을 온 동네에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으로 돌아오셨을 때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죽어가는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하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으로 가시는 중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고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는데 그 순간 치료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자기에게 손을 대었는지 다 아시면서도 일부러 누가 그랬냐고 많은 사람들을 향해 물으셨고, 그 여자는 자기에게 있었던 몸의 문제와 그것이 방금 치료된 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몸에서 피나 액체가 흘러나오는 문제가 있으면 부정한 사람이 되어 접촉한 다른 사람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 부정한 여인을 깨끗하게 치료하셨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가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로 지체하시는 동안 야이로의 딸은 죽었습니다. 그 소식을 알리러 온 야이로의 집 사람들은 이미 늦었으니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다며 절망을 드러냈지만 예수님은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야이로의 집에 가셨습니다. 야이로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이 우는 사람들을 보시고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집안에 들어가 그 딸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고, 그 아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12년 동안 혈루병에 걸린 여자가 치료받았을 때는 일부러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셨지만 12살이었던 야이로의 딸이 살아나는 현장에는 제자 세 명과 그 부모만 데리고 들어가셨고, 그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사람들을 무력하고 두려워하게 만드는 일들이 등장합니다. 거센 풍랑과 악한 귀신과 소유를 잃는 것과 치료되지 않는 질병과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벌벌 떨었고, 귀신들린 자는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거라사 지역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다른 손실이 있게 될까봐 빨리 떠나시길 원했고, 12년 동한 혈루증을 앓은 여인은 육신적 고통과 자신이 부정해진 것으로 위축되어 있었고, 야이로의 집 사람들은 그의 딸이 죽자 절망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두려움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어느 시대보다 자연을 극복하고 사는 것 같지만 여전히 통제되지 않는 환경은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게 살면서도 현대인들은 가난해질까봐 두려워합니다. 어느 시대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도 건강을 잃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두렵게 하는 것을 없애 줄 더 강하게 보이는 것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놀라워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명령하실 수 있고, 심판하실, 세상 무엇보다 두려워해야 할 예수님께 엎드리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등장하는 이들은 자신을 괴롭히던, 두렵게 하던 것들에서 자유롭게 되면서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엎드리고, 복종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집어삼킬 듯한 풍랑을 두려워하다가 이제는 그것을 자기 뜻대로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귀신들은 자신들을 괴롭게 하는 예수님을 두려워했고 귀신에서 자유롭게 된 자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 예수께서 행하신 큰 일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혈루증에서 구원받은 여인은 자신을 예수님 앞에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두려워하며 예수님께 나와 엎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믿으라고 도전하셨습니다. 풍랑 때문에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는 “네 믿음이 어디있느냐?”라고 물으시면서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혈루증에서 치유된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이로에게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의 사건들은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답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무턱대고 믿으라고 하시지 않고 자신의 사랑과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자신이 믿을만한 분임을, 두려워할 어떤 다른 것보다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경험한 풍랑보다 무섭게 땅이 녹아내리고 하늘이 증발하는 두려운 일이 있어도,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처럼 우리가 오랜 질병에 지쳐도, 야이로의 딸처럼 결국 우리 육신의 호흡이 끝날지라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모르시거나 무능하셔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재난과 질병과 죽음 너머에서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와 회복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단지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실 것 뿐입니다.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제자들과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에 풍랑이 방해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인하게 되고, 믿음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요14장)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을 뚫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를 삼킬듯 두렵게 하고, 믿음을 잃게 하는 사건들과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그것들 위에서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항상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