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1-1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이 죄인들을 받아주시고 어울리시자 종교지도자들이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알도록 비유로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도록 또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자신의 재산과 종들을 관리하는 청지기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위해 정직하게 일하지 않았는데 그 사실을 안 주인은 그를 해고시키려 했습니다. 청지기는 자신이 쫓겨난 후에 의지할 사람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주인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땅을 빌린 소작농은 토지 임대료 즉 땅 빌린값을 그 땅에서 자기가 추수한 것으로 땅 주인에게 지불해야 했는데, 그것마저 빚지게 된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해고될 그 청지기는 사람들의 빚을 자기 마음대로 깎아줬습니다. 기름 백 말 빚진 자는 오십으로 바꿔서, 밀 백 석 빚진 자에게는 팔십으로 낮춰서 빚문서, 채무이행각서 같은 것을 다시 쓰게 해줬습니다. 그렇게 빚의 일부를 면제받은 소작농들은 땅 주인, 즉 그 청지기의 주인에게 고마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청지기는 끝까지 자기 맘대로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지만 결과적으로 소작농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을 했고, 그로 인해 주인이 존경받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이 존경, 명예를 매우 중요하게 목숨처럼 여겼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비유 속 청지기를 모범적인 사례로 예를 드신 것이 아닙니다. 8절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일에 있어서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기적인 본성에 따라 비유 속 청지기처럼 행동할 법한데 하나님을 섬긴다는 종교지도자들이 그런 지혜도 발휘하지 못할만큼 무지하다는 것을 대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일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태도를 가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영광을 돌리도록 섬겨야 했습니다. 그것이 종교지도자들의 본분이고 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14절을 보면 종교지도자들은 돈을 밝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척 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과 같았고, 또 탕자 비유 속 첫째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종의 태도를 가진 것처럼 하나님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잘 가르쳐서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구속자를 바라보도록 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도와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이미 타협하고 있는 현실 속 죄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맞장구 쳐주고, 그런다고 해서 지울 수는 없는 백성들의 죄책감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불렸습니다. 18절에서 예수님이 이혼문제를 지적하신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율법이 혼인의 신성함을 말하고 있지만 이미 흔해진 사람들의 이혼 풍속을 더 건드릴 수 없으니 종교지도자들은 괜찮다고 편들어주면서 자신의 종교적 고객을 잃지 않으려는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타락할 때 교회는 이원론적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런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 밖 삶에 대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자유가 주어진 것처럼 성도들에게 암묵적으로 허용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마음 속 죄책감을 종교시설 안에서 율법적이고 공로적인 행위로 씻어내고 만족하도록 합니다. 예배와 삶이 일관된 인격적이고 거룩한 신앙이 아니라 분열된 이중인격 같은 이원론적 신앙이 판을 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맞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계속 부정하면서도 죄책감을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이 그렇게 변질되었고, 개신교도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지만 필요 없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율법 특히 십계명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게 해줍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율법이 안내해 줍니다. 또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죄성과 이기심을 시인하고 예수님께 의지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지만 구원받은 자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율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고, 돈을 섬기려고 위해 율법과 백성들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므로 12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돈이라는 주인을 섬기지 말라 하시고, 15절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얻고 높아지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비유 속 청지기가 자신의 자리와 물질이 다 사라질 때 자신을 기억해주고 은혜를 베풀어 줄 자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우리는 언제가 사라질 물질과 돈을 잘 사용해서 영원히 남는 것을 얻는 데에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9절부터 예수님께서 불의한 제물로 친구를 만들라고, 불의한 제물이지만 그것을 충실하게 잘 활용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런 뜻입니다. 물질, 돈을 섬기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도록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것을 가르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욕심, 돈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비유 속 악한 청지기만큼도 안되는 짧은 안목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때, 이 땅에서 쌓아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그때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유일한 것을 위해 살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먼저 자신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구원을 얻도록 돕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그런 종교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깨닫도록 자극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앞을 내다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멀리까지 내다보는 시야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예고하고 있는 세상 끝과 심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사라져도 그때까지 남는 것, 그때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때 남는 것은 나 같은 죄인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믿음뿐입니다. 그리고 먼저 믿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도록 하나님이 주신 자원들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지난 주 본문의 비유 속 교훈대로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안타깝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들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돈을 충실하게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대로 주변의 친구들과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우리의 것을 할애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넉넉하지 않을 수 있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면서 관심을 가져서 혹시라도 우리의 헌신을 통해 그들이 예수님을 알 기회가 생기도록 우리에게 주신 자원을 사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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