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4) 창세기 1:26-28

따뜻한 진리 2022. 5. 29. 15:10

창세기 1:26-2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자신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거울을 볼 때 보이는 우리 몸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갖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몸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비슷하게 묘사하는 기관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도 입이 있고, 하나님이 보고 들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눈과 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눈코입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 눈코입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몸을 비롯해서 피조세계의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들, 모사들입니다. 보이는 것들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유추하고 가늠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닮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과 닮아야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정복자가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 자기를 닮은 복제된 형상물, 동상을 세워서 누가 그 지역의 주인인지 알리고 자기 영광을 드러내듯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세상에 자기를 닮은 형상을 두셔서 이 세상이 누구의 것인지 알리시고 자기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 살아있는 형상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닮은 형상의 성질들을 가지고 기능하도록 의도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이미 하나님을 닮은 부분이 있지만 그 점들을 가지고 계속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고 하나님을 닮은 일들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목적을 말합니다. 닮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닮는 것은 닮게 한 자의 영광이 달린 일입니다. 자녀를 향해서 ‘얘는 누굴 닮아서 이래’라는 말을 하는 것이 부모를 영광스럽게도 할 수 있지만 수치스럽게 하는 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닮음은 닮은 자와 닮게 한 자 모두를 영광스럽게 하거나 수치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닮겠다고 하는 것은 그 대상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훌륭하게 여기고,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렇게 여겨서 닮고자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닮는 행위들을 하는지 본문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첫 번째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유사하게 따라 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일이 창조라면 우리 인간의 일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의 과학 법칙과 재료들을 가지고 새롭게 여겨지는 것들을 만드는 창작입니다. 우리가 하루라도 없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용한 도구, 장치, 전자제품, 치료약, 컴퓨터, 전자기기들은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인간은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을 만듭니다. 그런 창작 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물건들을 창작하는 것을 넘어 인간은 생명을 만들어냅니다. 생명을 낳는 것은 정말 창조에 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서 생명을 낳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생명을 낳기는 하지만 인간만이 유일하게 영혼을 가진 생명을 낳습니다. 창세기 5장 3절을 보면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고 말하면서 아담이 아들을 낳은 것을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것의 모방행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은 자기를 닮은 자녀를 출산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닮은 일들을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것은 두 번째로 우리의 다스리는 행위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스리는 것은 책임지고 그 대상을 바르고 복되게 돌보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스려야 할 대상의 특성을 알아야 하고. 각 개체가 전체 속에서 하는 역할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그런 능력들을 어느 정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2:19절을 보면 아담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실 때 여러 가지의 이름을 붙이시고 부르셨던 것처럼, 아담도 따라한 것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다스림과 돌봄을 통해 성전 에덴이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는 곳이 되도록 지켜야 했습니다. 아담은 짐승들을 다스려야지 반대로 그것들에 조종되고 다스림을 받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담은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자기 위에서 자기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따라 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것의 의미는 세 번째로 안식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6일 간의 창조 후 안식하셨습니다. 고대 근동지역 사람들은 다양한 신들이 다양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낮은 신은 노예처럼 일해야 하고, 계급이 높은 신은 쉴 수 있는데, 어떤 신들 아래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도 운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노예처럼 일하신 것이 아니었고, 자신이 한 일을 ‘보기에 좋다’라고 만족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쉬신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일하지만 또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언젠가 하나님처럼 쉴 것, 안식할 것을 기대하면서 순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을 통해서도 사람이 자기를 닮을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장을 보면 광야에서 범죄 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너희가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후 여호수아 때에는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이 끝이 있어서 완성에 이르는 단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것, 또 닮은 일을 하는 것은 영광스럽고 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는 것을 반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죄라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를 있게 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을 반대하고, 자기를 드러내겠다고 반항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닮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 반감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신명기 1장을 보면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사무엘하 7장 14절을 보면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말합니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말씀하시고 우리도 그 관계 속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는 이 세상 어떤 피조물보다 영광스런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 실체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부인하며 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순종으로 완전하게 행하셨습니다. 보이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닮은 아들로서 온전하게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이 이루지 못한 임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수님이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바꾸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항상 부족하나 담대하고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형상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경건한 삶과 선행과 복음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하나님이 심판자이심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