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19) 창세기 9:18-29

따뜻한 진리 2022. 9. 11. 21:12

창세기 9:18-29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두려운 홍수 심판이 끝난 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들은 다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갔습니다. 노아의 아들들 셈, 함, 야벳은 자녀를 낳아 그 후손들이 많아졌습니다. 노아는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주를 만들었고, 그 포도주를 마시고는 취해서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형제들에게 알렸고, 두 형제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몸을 가려드리고 그 몸을 보지 않았습니다. 술이 깬 노아는 있었던 일을 알게 되고, 함의 후손들이 저주를 받아 셈과 야벳의 후손들의 종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나님께 탄원 기도를 했습니다. 나중에 셈의 후손들 중에서 아브라함이 나오고 이스라엘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함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쫓아내고 진멸시키라고 하셨던 가나안의 족속들이 됩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그 시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의로운 자로 칭찬하신 것과 그의 온전한 충성으로 그의 가족도 구원의 방주에 오르게 된 것 때문에 우리는 노아를 존경스럽게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본문에서 그의 술 취한 모습에 우리는 실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은 우리에게 노아의 그런 인간적인 한계를 보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예표하는 인물들을 사용하신 이야기들에는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와 죄들을 빠뜨리지 않고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예고하는 모형으로써 탁월함을 보인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사용하신 것이지 그들은 연약한 죄인이고, 진짜 구속자가 아님을 분명히 알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노아의 술 취한 사건에 대해 어떤 평가도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노아의 실수를 알리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노아의 술취함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노아의 이름은 안위, 쉼, 안식이라는 의미를 가졌고, 홍수 심판 전 그의 의롭고 온전한 삶은 죄인들이 가득한 세상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그러나 홍수 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자신의 수고로 얻은 포도주를 가지고 자기 이름처럼 위로와 쉼을 누리려 했습니다. 그것은 노아에게 부끄러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노아가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과 저주를 예언하는 행위를 한 것은 그저 노아가 자기가 잘못해놓고는 함에게 화풀이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본문은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일들이 재현되는, 다시 반복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노아의 아들들은 후손들을 낳아 땅에 퍼졌고,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노아는 농사를 지어 포도 열매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에덴에 뱀이 나타나 금지된 열매를 먹게 한 것처럼 노아는 포도주라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해 취했고, 뱀이 아담의 벌거벗음을 알게 한 것처럼 함은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보고 형제들에게 알렸고, 하나님이 벌거벗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것처럼 셈과 야벳은 옷으로 아버지의 몸을 가렸습니다. 또 노아가 셈과 야벳의 후손을 축복하고 함의 후손 가나안에 대한 저주한 것은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의 승리와 뱀의 후손의 멸망에 대해 예고하신 것과 유사합니다.

 

    이렇게 에덴에서 있었던 일들의 내용과 본문의 내용이 겹치는 것은 에덴에서 있었던 일들이 홍수 심판 후의 새로운 세계에서도 여전히 계속됨을 말합니다. 가인과 아벨 이후 드러났던 하나님의 자녀와 뱀의 자녀 사이의 갈등과 위기가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함을 그냥 함이라고 부르지 않고, 18절. 22절에서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라고 말합니다. 노아 역시 함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함의 후손들인 가나안 족속들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축복과 저주는 그 당사자인 셈, 함, 야벳을 넘어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들의 갈등과 전쟁을 예고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그곳에 이미 살고 있는 함의 후손들인 가나안 족속들을 없애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시킨 것은 홍수 심판과 유사하게 최종심판을 예고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홍수 전까지 하나님을 모욕하고 부도덕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가나안 족속들은 우상을 섬기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정복은 홍수 심판처럼 궁극적인 구원과 심판을 하나님이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셈, 함, 야벳에 대한 축복과 저주로 하나님께 의탁한 것은 결국 홍수 심판과 같은 일이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뿐 아니라 신약 시대에서도 재현될 것을 포함합니다.

 

    노아의 축복과 저주가 가나안 땅에서 눈에 보이는 복과 저주로 나타나긴 했지만 그러나 절대적으로 영원하게 두 후손을 갈라놓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보다 우위에 있고, 많은 복을 누렸지만 결국 망하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함의 자손인 가나안 사람들이라 해서 모두 구원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고 구원받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통해 함의 후손인 가나안을 남기지 말고 전멸시키라고 하신 것, 일시적으로 이스라엘의 지배 가운데 두신 것은 궁극적으로 일어날 심판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노아가 기도 형식으로 축복과 저주의 예언을 한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의 관계를 넘어 이 세상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탄의 자녀들의 관계를 예고합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두 부류 간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리허설임을 노아가 예언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경건하고 의로운 노아의 아들 중에도 사탄의 씨가 있었고, 그가 방주 안에도 살아 있었습니다. 홍수 전에는 악인들에 의해 의인들이 거의 전멸되다시피 했고, 노아의 후손들 중에도 악한 세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악인들의 세상이 되게 하지 않으실 것을 노아를 통해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이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통해 완성하고 계십니다. 이 일이 마칠 때까지 성도들은 구원을 받았어도 이 땅의 것으로 참 위로를 얻을 수 없습니다. 노아가 마신 포도주 같은 것으로 세상의 근심을 덜고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악인들과 잠시 공존해야 하는 세상, 그들에게 힘겹게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는 현실에서 많은 인간적인 위로와 쉼을 얻고 싶을 수 있지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자신을 포도주로 참 생명과 위로와 안식으로 주신 예수님을 우리는 참 양식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주일과 예배가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쉼과 위로를 주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