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28) 창세기 17:1-27

따뜻한 진리 2022. 11. 13. 19:51

창세기 17:1-2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아브람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 13년이 지난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아내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람이란 이름은 그의 육신의 아버지 데라가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다는 것은 아담이 동물들을 다스리는 위치에서 이름을 붙인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다스리는 분이심을 확인시키는 것이고, 위대한 왕이나 시조의 이름을 새로 붙이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그를 통해 생겨날 자손들의 시조, 많은 이들의 아버지가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새 이름을 주셨을 뿐 아니라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는 남자 생식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그 가족과 그의 관리 아래 있는 모든 종들 중 남자는 다 할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남자 아기들은 태어난지 8일째에 할례를 행해야 했고, 이후에 태어날 아브라함의 후손들 역시 할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할례는 잘라내는 것, 없애는 것, 끊는 것을 말하는데, 이스라엘에 속한 한 아버지가 그저 자기 몸으로 자녀를 낳았다고 그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새사람 되는 것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할례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나님의 자녀를 낳을 수 없음을 할례로 고백하고, 태어난 자녀도 그런 존재임을 할례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를 생산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할례를 외적으로 실행한다 해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런 고백이 할례로 이뤄져야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남자 중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서 잘려져 끊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할례는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신약 시대 사도 바울은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유대인들에 맞서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 않았냐고 확인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대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후에 할례를 요구받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달리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없이 할례만 행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신명기 10장 16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로 말했습니다. 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자기 몸에 행한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우월감만 느꼈지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그에 걸맞지 않았습니다. 할례라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가시적인 표시가 몸에 있지만 하나님께는 별 관심도 없고, 하나님을 존중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마음의 할례, 속 사람이 새로워지는 일은 잘 없었습니다.

 

    사도들은 할례의 역할과 한계가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51절을 보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라고 말했고, 로마서 2장 29절에서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라고 말합니다. 또 빌립보서 3장 3절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라고 말하면서 진짜 할례가 무엇인지 말합니다. 성경은 단순히 몸에 행하는 할례만을 말하지 않고 마음의 할례까지 말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할례는 무엇일까요? 1절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요구하시면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완전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구원받는 것, 하나님의 백성되는 것은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가능한 것인데 하나님은 어떤 완전함을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창세기 6장 9절을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 노아는 완벽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방주에서 나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하나님은 그를 완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다윗을 살펴봅시다. 시편 18편 23절에서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라고 다윗이 말합니다. 다윗이 완벽한 삶을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치명적인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스스로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은 하나님처럼 완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완전은 노아와 다윗에게서 드러났듯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 곁에 머무르며,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것을 선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죄와 씨름하게 되고, 죄를 지었을 때는 숨길 수 없는 하나님께 실토하고 회개하는 것, 그것이 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완전은 도덕적이고 이타적이고 흠이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으로 나타날 수 있고 그래야 하지만 그런 삶이 성공하는 것이 완전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 완전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완전은 스스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가 진정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육신의 할례를 넘어 근본적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옛사람의 생명이 끊어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생겨나는 것, 성령 즉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루심을 받는 새사람 되는 것이 마음의 할례가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후손들의 마음 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자신의 할례 받은 흔적을 생각하며 하나님은 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이 되는 복을 나 같은 자에게도 선물로 보장해주시는가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내가 신앙에 실패해도 계속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 안에 살게 하시는 이 은혜는 참으로 놀랍다고 생각하면서 노아처럼,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더 이상 할례를 몸에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할례와 같은 흔적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믿을 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보장하시겠다는 약속의 흔적을 역사 속에 남겨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마지막 부분에서 할례와 무할례 문제로 혼잡하고, 자기 육체의 것을 자랑하는 위험에 빠진 공동체에게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자기 몸에 있는 어떤 흔적이나 자랑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출신과 몸으로 행한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당겨 올 수 없음을 할례가 기억하게 했습니다. 할례는 그런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끊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몸의 흔적마저도 자기를 특별하게 여기고, 남들과 차별화하고, 구원을 위해 선택받은 증거로 오용했습니다. 마치 율법을 잘못 사용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 할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세상의 헛된 자랑을 끊고 하나님과 이어주시는 통로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진정 마음의 할례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오도록 도우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그 완전함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어 세상의 헛된 것들에 대해서는 끊어지고 하나님과 이어지는, 거듭나 참 생명 얻는,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