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8-3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을 낳은 사라가 자기 방법으로 낳은 이스마엘을 쫓아냈지만 하나님은 그런 이스마엘에게도 일반은총에 있어서는 이삭에 버금가는 복을 약속해 주신 장면을 살펴봤습니다. 이 시간에는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사라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아브라함은 17장 19절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그 아들에게 이삭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태어난 지 8일 된 이삭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삭에게 행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스마엘은 비록 여종의 몸을 통해 태어났지만 아브라함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쫓아내야 했습니다.
이어서 아브라함이 살던 땅의 왕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자고 제안을 합니다. 아비멜렉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여동생인 줄 알고 아내로 삼을 뻔했던 그랄의 왕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언약을 맺자고 제안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셔서, 아브라함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점점 힘이 강해지는데 시간이 지나서 아비멜렉이 죽고 나면 아브라함이 원래 자기 땅이라고 말하거나 그 땅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이 원래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허락해 준 땅에 대해 언약을 세우고 맹세할 것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자기가 찾아서 파낸 우물을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아 갔다고 고발합니다. 아비멜렉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땅에 대한 계약과 함께 우물에 대한 소유권도 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가져다가 언약의 증거물로 아비멜렉에게 선물했고,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주며 우물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도 확인받았습니다.
그러면 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자고 제안했을까요? 23절을 보면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이라고 말합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속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 약속을 맺는 인간적인 장치를 두고자 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라는 인간을 믿을 수 없었기에 너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겪은 두 가지 일, 즉 이스마엘이 쫓겨나지만 아브라함이 근심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보장하신 것과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삭이 태어나서 좋은데, 내보내야 하는 이스마엘을 하나님이 책임지겠다 하시니 더 잘 되었고, 아비멜렉과 계약도 맺었으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과 땅에 대한 약속이 다 성취되었다는 뜻일까요? 아브라함의 해피앤딩일까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다음에 이어지는 매우 중대한 사건,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불로 태워)로 드리는 사건과 연결됩니다.
먼저 이스마엘에게 일어난 일과 이삭에게 일어난 일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1장 14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보낼 때 아침 일찍 일어나고, 22장 3절에서도 이삭을 데리고 갈 때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갈의 어깨에 떡과 물을 짐 지우고, 이삭에게는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지게 합니다. 하갈은 지치고, 죽어가는 이스마엘을 덤불 즉 엉켜있는 작은 나무 아래 눕혀서 쉬게 했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 할 나무 위에 이삭을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눈이 밝아진 하갈은 샘물을 발견해서 이스마엘을 살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발견해서 번제로 드려 이삭을 살리게 됩니다.
다음으로 아비멜렉이 언약을 맹세하라고 한 사건도 아브라함을 준비시킨 사건이었습니다. 23절을 보면 아비멜렉은 앞으로도 아브라함이 ‘거짓되이’ 행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반성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비멜렉이라는 한 인간이 보기에도 나는 믿음직스러운 상대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존을 위해 교묘한 말을 하며 살아온 자신을 언약 상대로 삼아주셔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에 믿음보다 웃음으로 응답한 자신에게 이삭을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33절에서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에는 그런 반성과 감사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 후 22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을 떠나보낸 일과 아비멜렉이 언약을 맺자고 요구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바칠 순간을 위한 준비, 시험 받을 준비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를 수 있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이 자신을 믿게 하시는 과정이었지만 본문의 두 사건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간을 위한 최종적인 준비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좋은 것들을 주셨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이 그것을 쥐고 계속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림으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잠깐 언급했지만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이삭 둘 다 잃게 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과 헤어졌습니다. 11절에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보내는 일 때문에 매우 근심했다고 말하듯, 그것은 자식을 잃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낳은 이삭도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그는 ‘이스마엘을 잃었는데, 이삭마저 잃을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스마엘을 보낼 때처럼 이른 아침 일어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려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보낸 일 때문에 이삭에게 더 집착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마엘을 보낸 일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가운데 이삭을 드리는 일에 순종했습니다. 언약 밖에 있는 이스마엘도 복 주시는 하나님, 인간이 도저히 낳을 수 없는 이삭을 주신 하나님이 이삭의 죽음을 넘어 가장 선한 일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생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통해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단련시키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과 변치 않으심과 진실하심과 성실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신뢰하길, 믿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구원하려는 자, 자기 나라의 백성 삼으려는 자, 자신의 언약의 상대로 삼는 자에게는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신뢰하게 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과 의심을 하지 않고 나를 신뢰하는 자를 우리가 기뻐하듯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시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시험 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다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내놓는 극적인 시험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사소한 일부터 성공에서 절망에 이르는 굵직한 일들을 통해서도 우리의 믿음은 시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엇보다 우선이시고, 지금 내 앞에 일어난 일들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고, 내가 교만할 수 없는 이유이신 동시에 낙심하지 않을 이유도 되신다는 믿음이 고백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야 하는 극적인 순간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시키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이 증명되고 드러나야 할 중요한 순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항상 단련시켜주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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