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31) 창세기 19:1-38

따뜻한 진리 2022. 12. 4. 19:46

창세기 19:1-3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아브라함이 간청하며 막으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천사들을 보내셔서 소돔이 심판받아 마땅한 곳임을 확인시켜주십니다. 롯도 아브라함처럼 자기 성읍에 찾아온 두 천사를 귀한 손님으로 맞이하며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소돔의 여러 사람들이 롯의 집 앞에 모여 그 두 방문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했습니다. 그 주민들이 두 방문자를 요구한 것은 성폭행하려 하려 한 것입니다. 롯은 어떻게든 두 손님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두 딸을 대신 넘기겠다고 제안했지만 악한 무리들은 도리어 롯을 혼내주겠다면서 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오려 했습니다. 롯의 집 안에 있던 천사들은 악한 소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곧 멸망할 소돔에서 롯과 가족들이 신속히 피신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롯이 가족들을 설득했지만 딸들과 결혼할 예정인 사위들은 롯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비웃었고, 롯의 아내는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결국 롯은 두 딸과 함께 동굴에 머물렀습니다. 두 딸은 자신들이 결혼을 통해 대를 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한 다음 동침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롯의 가족은 패륜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자기 본능과 능력에 근거해서 후손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가정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후손을 얻게 된 것과 대조됩니다. 27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소돔이 멸망하며 연기가 치솟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한때 그돌라오멜에게서 소돔 사람들을 구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돔은 결국 심판받아 멸망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가득하고, 그만큼 증요한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소돔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소돔은 매우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소돔에 여러 가지 죄악들이 많았겠지만 특별히 성적인 죄를 본문이 말하는 이유는 인간의 죄로 인한 악함의 정점이 성적인 범죄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성범죄는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허락하신 질서와 명령을 비웃고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남자와 여자라는 구별을 거부하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으로 이루어야 하는 가정을 무너뜨리고, 부모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낳아 기르는 헌신을 회피하고, 하나님이 허용하신 테두리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에 반항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단순한 성폭력이 아닌 동성애와 근친상간을 다룹니다. 성범죄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고, 오늘날 ‘성소수자들’이라는 용어로 보호받고, 권리를 인정받으려는 자들 역시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그런 죄를 범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당당하려고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왔는데, 그들은 성적인 질서와 경계를 깨뜨리는 것이 자유이고 해방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고, 이성 간의 사랑만을 인정하는 것은 억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세상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구분을 허물고, 성적으로 낯설고 이상한 것들에 대해 포용하게 되면 여러 갈등이 사라지고,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구별, 거룩을 훼손하는 남녀관계에 대해 정죄하고 있습니다. 소돔은 그런 죄의 결과로 심판받았습니다. 천사들은 롯의 집에 침입하려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고, 하나님께서는 소돔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리셔서 소돔에 있는 사람들과 생명을 멸망시키셨습니다. 노아 홍수 사건이 하늘에서 내리는 물로 이뤄진 심판의 방법이었다면 소돔 심판은 하늘에서 내린 불로 이뤄진 심판이었습니다. 성적 타락이 소돔이 심판받은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적 문란함이 소돔이 심판받아 마땅한 상태임을 증명하는, 뻔뻔해진 양심 상태를 드러내는 죄였음이 분명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롯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망시키실 때에 롯을 살려주신 것이 아브라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시키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면서 간청한 아브라함의 부탁대로 하나님은 소돔에 기회를 주려하셨으나 천사들의 방문은 소돔이 심판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입니다. 결국 소돔은 심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아브라함의 부탁대로 하나님은 심판 중에서도 의로운 자를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래서 롯과 함께 그의 가족들이 구원받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언급했듯 베드로후서 2장 7절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라고 말하면서 롯이 의로웠다고 말합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가족으로서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신 자였습니다. 롯은 방탕한 소돔 사람들의 행실을 보면서 날마다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소돔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롯은 소돔 사람들이 악한 줄은 알았지만 결국 닮아갔습니다.

 

    롯은 자신이 나름 소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롯은 동성애를 반대했고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딸들의 순결은 희생시켜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들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그 시대의 관습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애굽에서 살기 위해 아내를 이용했습니다. 롯의 딸들은 자신들을 함부로 여긴 아버지처럼 자신들이 아버지를 함부로 이용했습니다. 당시에 여자들이 살아남고, 존중받는 방법은 아이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롯의 딸들은 자신들의 속임수로 대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런 문제가 일어난 이유는 롯이 소돔의 죄만 분별했을 뿐 자신의 죄는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롯은 소돔에서는 구원 받았지만 자기 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롯처럼 우리도 똑같은 문제를 가집니다. 교회 역시 롯처럼 모순된 도덕 기준을 가지기 쉽습니다. 롯이 동성애는 악하게 여겼지만 자기 딸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것처럼 어떤 교회들은 동성애나 공산주의를 적대시하고 반대 집회도 하지만 물신숭배, 인본주의, 성장주의, 권력과의 유착, 하나님을 비인격적으로 여기는 일에는 문제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동성애나 공산주의는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들은 외부에 있는 적들을 공격하면서 교회 안의 여러 가지 거짓 신앙과 교묘한 죄들에 대해서는 안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라는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어떤 죄는 매우 민감하게 분별하고 방어해내지만 어떤 죄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익숙하게 저지르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종일 가까이하고, 즐기고, 습관적으로 행하는 것들 중에 많은 죄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왜 죄냐고 의문시할 만큼 당연시하는 죄가 많습니다. 우리는 롯처럼 그것이 문제인 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 같은 나라를 없애거나 악한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거나 어떤 심각한 죄를 막는 것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소돔이 멸망했어도 롯의 가족을 통해 동굴 피신처에서 다시 소돔이 복원된 것처럼 우리는 나 같은 죄인 하나만 살아있어도 이 세상은 다시 죄인들의 도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그것을 말합니다. 롯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자가 임하는 심판의 날에 대해 예고하시면서 오늘 본문인 소돔의 멸망을 언급하셨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다가 갑작스럽게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아내가 탈출하다가 뒤를 돌아본 것은 자신이 살던 소돔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돔이 멸망 당하기엔 너무 아까운 성읍이었고, 그곳에서 자신이 이룬 것을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 롯의 아내는 돌아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롯의 아내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롯의 아내처럼 이 세상에 대해 잘못된 애착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돔이 그랬듯 이 세상은 지금 당장 심판받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소돔이 망한 것처럼 이 세상은 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이 임할 이 세상을 위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자비를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의인들이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님이 오셔서 이루실 완전한 심판을 소망해야 합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나 소돔의 멸망은 여전히 살아남은 죄인이 다시 퍼져나갈 수 있는 부분적인 심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세력이 살아날 수 없는 심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다스리시는 나라가 임하는 심판을 고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신 이유, 그 아들을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신 이유는 그저 아브라함의 가문이 잘 되고, 이스라엘이 세상을 다스리는 막강한 제국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을 주신 것은 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질 하나님 나라의 서막이 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그 기쁘고 설레는 일을 알리신 후 소돔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낳는 일에 대한 소식에 바로 이어 생명들을 심판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풍요의 신, 다산의 신이 아니라 세상을 심판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기적의 아들을 주시는 이유는 그저 아브라함 좋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악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주는 것임을 소돔 심판으로 알리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좋아할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과 심판을 통한 완성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