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1-2 (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바울은 자신이 온갖 고생을 감수하며 교회를 복음으로 세우는 일을 하는 이유와 의미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과 또 편지를 읽는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고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우리가 위로부터 오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우리가 이 땅의 현실과 욕망과 성취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확인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이 시간에는 계속해서 1절과 2절에 등장하는 그런 요소들을 살피고자 합니다.
1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의 편지를 읽는 대상들을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은 성도이자 신실한 자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명칭에 대해 익숙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바울의 인사를 성급하게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을 부르는 성도라는 표현의 뜻을 잘 알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고 삶의 중심도 잡을 수 있습니다. 먼저 성도에서 ‘성’이라는 글자는 거룩하다는 뜻이고, 영어로는 holy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거룩한 자인데, 거룩하다는 것은 따로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 성스럽다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존재나 대상을 향해서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향해 거룩하다 성스럽다고 말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드러내기 위해 이방 족속들과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사탄의 지배를 상징하는 애굽에서 분리되어 거룩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의 우상숭배와 타락한 문화에서 구별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거룩한 자들이었고, 거룩을 추구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들이고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거룩을 추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구별은 우리가 이미 거룩해진 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의무를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는 원래 범죄한 아담처럼 사탄의 성향을 물려받아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자신을 멸망시킬 죄를 즐거워하며, 지금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며 살다가 영원한 지옥을 갈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셔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주셨습니다. 거룩하게 구별해주셨습니다. 이 구원은 우리의 행실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흠없이 거룩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성도라고 불러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거룩하지 않은 자였지만 하나님 편에서 거저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고 결국에는 완전히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성도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죄들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라는 명칭을 빼앗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를 항상 성도로 인정하십니다. 이 구원과 그로 말미암은 성도라는 명칭이 사람의 행위와 완전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한번 구원하신 자의 구원을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성도로 부르신 자를 끝까지 거룩하게 여기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아는 자는 거룩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차별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격한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과 자신을 구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미 거룩하게 구별된 자이지만 또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자신이 성도라고 부르는 자들이 완전히 깨끗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흠이 없는 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닙니다. 성도로 불러주시는 하나님, 죄인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한번 거룩하게 만든 자들을 끝까지 거룩하게 지키시고, 결국에는 완전히 거룩하게 하실 하나님을 알기에 그들을 성도라고 부른 것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이미 행하신 일과 지금 품고 계신 마음과 앞으로 이루실 약속들을 함축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카톨릭 교회가 어떤 자들을 성인으로 칭송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흠 없어 보이고, 고상해 보이는 자들을 성인으로 구별해서 칭송하고, 그들의 공로에 의지해서 기도합니다. 그것은 어떻게든 사람의 공로를 자극하고, 자랑하려는 일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대로 우리가 성도라는 명칭을 의미심장하게 여기고, 고귀한 신분으로 여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자랑하거나 탁월해 보이는 사람을 칭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거룩하게 여기시고 만드시는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깨끗함이 완전하지 않고, 아직 성스럽지 않고, 칭찬받을만 하지 않지만 거룩하게 여겨주시고 결국 그렇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우리의 이름표인 것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아들의 공로를 높이기 위한 이름입니다.
성도라는 표현에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믿음을 드러내는, 믿는대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할 때 예수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셔서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직접 만져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을 때 도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처럼,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 전율하며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대로 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성도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 나를 사용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여기며 충성합니다. 그 충성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분으로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신실한 자, 믿을만한 자, 자신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거룩한 자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마치 보디발이나 바로가 요셉에 대해 가진 생각을 성도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느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신실한 자가 되며, 하나님께도 신실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명칭들, 하는 일과 소속에 따라 붙는 여러 호칭들은 결국 다 사라집니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사용되는 호칭,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호칭들 모두 결국 사라집니다. 그러나 성도는 영원한 명칭입니다. 하나님이 구별해 놓으신 거룩한 백성이라는 성도의 신분은 영원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되는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성도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조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세상으로부터 분명히 구분하셔서 자신의 대리자로,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라 구분하시는 것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동안 세상을 닮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마지막 심판 때에서 성도가 아닌 자들과 극명하게 차이를 가져올 것이고, 영원한 구분을 가져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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