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4 에베소서 1:1-3 (1)

따뜻한 진리 2023. 9. 17. 21:08

에베소서 1:1-3 (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읽는 자들이 성도이고, 신실한 자들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로서 은혜와 평강을 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이 은혜와 평강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참된 성도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해 거듭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비참한 죄인임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오직 그들만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참 은혜와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바울이 사용한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은 어떤 목사들이 설교 때 회중의 반응을 끌어내려고 뜬금없이 남발하는 ‘할렐루야’ 같은 의도로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성도들에게 임하는 은혜를 생각하며 감격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한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은혜와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이 찬양한 대상은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입니다. 앞서 2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바울은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실뿐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 성도들의 아버지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받은 성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면 예수님과 우리가 같은 급이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아들되심과 우리의 아들됨은 다릅니다.

 

    그 차이에 대해 설명하기 전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과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뜻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마 12:34)이라고, 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 8: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 모든 인간들의 아버지는 아니십니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사탄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구원받은 자들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들들이 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지 않는 자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사탄 취급하고, 공격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심판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들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자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지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기에 먼저 구원받은 자들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아들되심과 우리들의 아들됨의 차이점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있기 전, 창조 이전부터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들이 아니셨는데 십자가에서 순종하셨기 때문에 아들로 인정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같은 신으로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창조하는 일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십니다. 전에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조된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습니다. 또 성도는 죄에서 구원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즉 성도는 구원받은 이후에는 앞으로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지만 전에 존재하지도 않고, 아들이 아닌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이전부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우리는 입양된, 양자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독생자 아들, 참 아들이시라면 우리는 자녀들로 여김받는 아들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어야만, 예수님과의 관계 때문에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되심과 구원받은 성도들의 아들들 됨의 차이를 설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를 우리도 함께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만들어진 피조물이면서도 반역한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하셔서 자녀로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가 직접 영원히 겪어야 하는 심판을 참 아들이신 예수님이 당하게 하셨습니다. 참 아들 예수님을 잠깐 죄인 취급받게 하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핏값으로 얻은 죄사함과 공로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그 아들에게 피하는 자, 그 아들의 의로움으로 옷 입는 자들을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우리의 신분만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닮아가면서 아들다워지도록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도록, 찬양하도록 이 모든 것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살다가 죽어 사라지는 존재들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들로 계획되어 여기 지금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어떤 재산보다, 인생 속에서 고생하며 얻어낸 어떤 성취와 명예보다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바로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흔들리지 않는 위로와 소망이 이 사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이 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들에게만 일어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영원한 아버지이시고, 이제는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우리 같은 자들을 구원하셔 자녀 삼으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과 은혜를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어떤 일들을 행하시는지를 깨닫는다면, 또 언제든 그것을 떠올리며 묵상한다면 우리는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는 이 찬양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입니다. 찬송을 부르는 것, 노래하는 것만 찬양이 아닙니다. 예배의 모든 순서가 찬양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헌상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고 영원토록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을 통해 우리는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내가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가 창조된 목적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닌 음식에 대해, 어떤 예술작품에 대해, 잘 만들어진 신제품에 대해 찬양합니다. 높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찬양은 그저 세상 사람들이 찬양하는 그 내용을 가지고 대상만, 그 방향만 하나님으로 바꾸는 정도의 찬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좋은 것들을 주신 하나님 정도의 찬양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찬양은 내용도 달라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결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찬양의 내용들을 풍성히 가지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게는 전혀 찬양의 이유가 되지 않는 내용들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에 대해 우리는 부지런히 알고 찬양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삼위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창조와 구원과 완성을 우리는 찬양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될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드는 하나님을 아는 풍성한 지식이 우리를 복되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상태가 우리를 가장 가치 있게 하고 복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아들들 삼으시려고 참 아들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 그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아들 하나님, 그 아들을 알아보고 믿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감격스럽게 찬양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