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5 에베소서 1:1-3 (2)

따뜻한 진리 2023. 10. 1. 19:32

에베소서 1:1-3 (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사도 바울은 영원한 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아들들, 자녀들 삼아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녀들에게 복이 되지 못하는 아버지가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복이 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복은 우리 삶에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고, 바라는 모든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생명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그 생명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인해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리는 복들 중 많은 부분은 우리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주어집니다. 이 세상의 복이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보통은 노력한 만큼 주어지기 때문에 성도인 우리는 성실한 자기 수고를 통해 복을 얻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릴 때마다 우리는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한 복은 그런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신령하다는 것은 이 땅의 복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령한 복이라고 해서 신비한 기운을 체험하거나, 방언을 하고 천국을 미리 보는, 신비주의 체험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3절에서 바울은 그 신령한 복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아들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즉 성부께서 성자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성령 하나님에 의한 복을 말합니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복,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삼위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지난 설교 때 설명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하는 그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집중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관심하게 살아온 자들이기에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어렵다고, 나와 무관하다고 여기면서 집중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이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야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우리가 그 하나님으로 인해 어떤 복을 누릴지를 확인하는 기쁜 일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인격으로 계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모두 영원하시고, 사랑과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성령을 중심으로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 어떤 힘, 에너지 정도로 오해하는 일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처럼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불리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삼위 하나님 중 어떤 분도 홀로 단독으로 일하시거나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일하시지 않습니다. 삼위 하나님 각자는 나머지 두 위격을 겸손히 섬기십니다. 그래서 성부는 성자와 성령을, 성자는 성부와 성령을,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위하십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구원할 자들을 자기 뜻대로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계획하신 자들에게 일하십니다. 또 성령은 자기 능력을 자랑하시는 것이 아닌 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의 효력과 공로를 드러내십니다. 성령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이상한 신비 체험이 아닙니다. 성령의 가장 위대한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근거해서 죄인에게 회개와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우리가 구원받아 이러한 삼위 하나님께 우리가 속하는 복입니다. 죽거나 사라짐 없이 영원히 존재하시고, 사랑과 지혜와 능력과 무한하신 하나님 안에 우리가 속하는 복 말입니다. 이러한 삼위 하나님 안에서 속하는 것, 하나님의 자녀됨, 하나님 나라의 가족됨이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과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확인시켰고, 그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구한 것입니다. 이 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가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물이나 다른 죄인을 대신 죽게 하는 것으로는 어느 한 사람의 죄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참 구원자는 오직 죄 없는 사람이자 모든 구원받는 자들의 죄를 다 담당할 신적인 존재여야 하는데 그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죄인은 자신의 구원에 무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회개하고 예수 믿는 일을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사역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죄인의 양심에 빛을 비춰주셔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원자임을 알고 믿게 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창조될 때 하나님이 불어넣어 주신 숨, 즉 성령으로 인간의 생명이 생겨난 것처럼, 구원의 새 생명 역시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하늘에 속한,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복이고, 또한 우리를 하늘에 속하게 하는 복입니다. 창조 때 인간은 이 하늘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누리고 살도록 의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이 땅의 복들은 하늘의 복, 영적인 복을 우리가 생각하도록 만드는 모형들입니다. 영원히 함께 할 하나님과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소망하게 하기 위한 맛보기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속하지 못한 자들은 신령한 복이 아닌 이 땅의 복, 하나님이 망할 자들을 안타깝게 여기셔서 주시는 복의 수준에 만족할 것입니다. 또 그들은 어느 순간 그런 복조차 허무하다는 것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돌이키지는 않습니다. 이 땅에서 겪는 허무와 불안과 고통들이 지옥에 대한 예고임을 알아채지 못한 채 살다가 하늘이 아닌 곳에 속하게 됩니다. 성경의 비유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에 속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땅 아래, 스올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들 중 성부께서 선택하신 어떤 자들을 거듭나게 하셔서 하늘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이 땅에서 이상한 신비주의 체험을 하게 하려고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바울은 이 표현 안에서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복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신의 나라로 불러들여서 영원한 관계를 누리게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장 큰 복, 신비한 복입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성도에게 또 교회의 사역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초대교회로부터 전해진 고백을 정리해서 사도신경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성부, 성자,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를 요약해서 고백하는 내용 아닙니까?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아는 것, 삼위 하나님의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 삼위 하나님과 영원토록 가깝게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나라와 백성을 가장 잘 다스리는 어떤 왕 보다, 가장 존경스러운 어떤 아버지보다, 가장 사랑스러운 어떤 남자와 여자보다 우리가 칭송해야 하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운이 좋다고, 복 받았다면서 부러워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런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복, 신령한 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복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