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6 에베소서 1:1-4 (1)

따뜻한 진리 2023. 10. 8. 21:52

에베소서 1:1-4 (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셔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복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삼위 하나님의 복된 관계 속으로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이 비록 죄로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는 동안 수많은 은혜를 누립니다. 누구나 누리는 복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삼위 하나님 안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찬양하는 복입니다.

 

     사람이 이러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죄인인 옛사람이 죽고 거듭나야 합니다. 이 일은 성령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하십니다. 즉 성령께서 회개와 믿음을 우리에게 일으켜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몇 주 동안 그런 내용들을 포함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공로가 되시는 성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것을 각 죄인에게 적용하셔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 잠깐 설명했습니다. 그런 내용을 알아야 지금까지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근거를 발견하기 위해 단지 구원받는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 즉 회개하고 믿고 성화되는 것을 살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바울은 훨씬 더 오래전, 영원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 우리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셨고 계획하셨고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셨다가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짓자 놀라 당황하시며 해결책을 마련하신 것이 아닙니다. 즉 사람이 타락한 후에야 삼위 하나님이 우리 구원 문제를 논의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전부터 사람의 타락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을 조장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탄으로부터 에덴을 지키며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심, 은혜, 사랑, 전능하심, 영원하심, 완전하신 것에서 나오는 복을 우리가 누리게 하시려고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이 자기 행위에 따라 그런 복을 얻을 수도 있고, 저주를 당하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상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복들이 깨어져 상실될 수도 있는 세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런 좋은 것들을 상실한, 잃은 상태를 겪어 봐야만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귀하신 분이심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런 것을 의도하신 하나님을 악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상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하나님의 복되심을 뼈저리게 배우는 것, 죄의 비참함을 배우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 자들에게는 교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에 대해 반역하고 죄를 지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에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했을 때에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부수시고 구원하실 것을 즉시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창조 이전에 범죄한 아담과 그 후손들을 어떻게 하실지 이미 계획하셨습니다. 구원을 위해 성부는 성자와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아버지와 아들 간에 합의가 있었고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언약을 구속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구속 언약을 성경이 말합니다. 구약의 스가랴 1장부터 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 회복시키시고, 성전을 다시 복구하고,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시고, 이방 나라들과 이스라엘 중에 언약을 어긴 자들을 심판하시고, 만물을 완성하시는 것에 대한 환상을 스가랴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6장 12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라고 말합니다. 또 스가랴 6장 13절을 보면 이 싹으로 이름하는 자가 여호와와 함께 평화의 의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싹은 어린 잎이나 줄기를 말합니다. ‘순’이라고도 말하죠. 그런데 이 싹은 누군가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11장 1절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말하고, 이사야 4장 2절은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 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또 시편 110편을 보면 다윗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또 다른 주인이신 분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즉 성부와 성자 사이에 언약을 맹세하는 일이 있었음을 하나님께서 다윗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또 디모데후서 1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영원 전에 성부 성자 사이에 언약이 있었고, 이 언약 안에 구원하실 자들을 이미 계획하셨음을 말합니다. 바울도 그것을 알았기에 본문 4절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 이전에 하나님 아버지는 선택하신 백성들을 아들에게 주셨고, 아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아버지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를 하고 관계를 회복하여 새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계약의 조건은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의 몸과 인성을 입으시고 인류의 죄를 스스로 담당하시고, 그들을 대표하여 고난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창세 전에 이루어졌던” 언약입니다. 우리가 아는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등은 이 영원 전의 구속 언약을 가리키고,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언약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부수적인 언약들은 이 위대한 구속 언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풀릴만큼 우리가 철저하게 반성하고 고치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의 믿음이 대단해서 그 신뢰를 하나님이 저버릴 수 없으니까 구원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회개하니까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가 하나님이 구원할 자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에게 회개와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주시는 구원이 어떤 자에게 임했다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구원하신 증거로, 거듭난 증거로 회개하고 믿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물론 죄인은 거듭남을 하나님께 구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려고 구주를 믿으려고 해야 하지만 그렇게 구했다고, 애썼다고 해서 자신의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 전에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그런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난당하기로 약속하시고 순종하신 성자, 한 사람 한 사람 구원해 내시는 성령의 사역이 사람의 어떤 노력이나 변화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계획만 앞서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먼저 일하시기에 앞서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긴 시간 속에서 계획하시고 기다리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을 주시려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