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14 에베소서 1:15-22

따뜻한 진리 2023. 12. 3. 22:51

에베소서 1:15-2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바울은 이미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삼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계속 깨달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와 함께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크기와 위대함을 아는 것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고, 의지하게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싶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순종하게 되는 일이 사람의 노력으로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도 과학적인 관찰을 한다고, 논리적 설명을 듣는다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7절에서 바울이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셔야 하나님의 능력의 크기와 위대함을 알 수 있고,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해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한 사람 속에서 일하실 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능력들을 알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성도는 어디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까? 성도는 먼저 보이는 세계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이 우주, 이 세계를 통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들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봅니다. 우리는 창조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능력을 볼 뿐 아니라 심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나 소돔에 대한 심판, 애굽의 재앙처럼 세상에 일어나는 재난과 멸절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이는 세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도 위대하지만 바울은 다른 것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이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 능력입니다. 20절을 보면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시키셨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제아무리 발전해도 죽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좋은 약과 치료 방법으로는 단지 건강을 잘 유지하고, 죽음을 늦추는 것이지 한 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위치로 올리셨습니다. 하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죄인으로 정죄 받아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던 아들을 영광스러운 하나님으로 높이신 것입니다. 승천, 즉 땅에서 하늘로,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높아지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의 위대함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한 이유는 단지 낮아지신 예수님만 다시 높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우리에게도 미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앞에서 말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기업이 되게 하시는 것, 비천한 죄인인 우리를 높이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아들을 높이신 하나님이 우리도 높여주실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22절을 보면 바울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그저 예수님의 권위만 인정해주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본래 첫 아담은 창조된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죄로 타락했습니다. 죄인인 인간들은 여전히 피조세계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세상을 망치는 다스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없는 다스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높아지시고, 만물을 자기 발 아래 복종시키시는 것은 첫 아담이 실패한 다스림을 예수님께서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인간도 행하지 못한 선하고 완전한 다스림을 예수님께서 실행하십니다.

 

     이렇게 창조와 심판을 통해,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이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9절을 보면 바울은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되기를 구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때 병 고치는 능력, 위기를 해결해주시는 능력, 부자가 되게 해주시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기를 구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하시는 능력을 구해야 하고, 실제로 그 능력을 베푸셔서 구원받은 것으로 가장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여러 능력이 놀랍지만 우리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참으시고, 용서하시는 능력이 가장 놀랍습니다. 죄인의 고집스럽고 돌처럼 강퍅한 마음을 변화시켜서 구원하시는 능력이 놀랍습니다. 죄로 부패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능력이 가장 위대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말합니다. 또 성경은 죄인의 마음 상태를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죄인들을 어둠으로 표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표현하는 것은 창조의 빛을 있게 하신 능력만큼이나 어둠인 우리의 상태를 드러내시고 변화시키시는 그리스도의 능력도 위대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창조의 능력보다 심판해야 마땅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자녀로 바꾸시는 능력, 이 재창조의 능력이 더 위대한 것입니다. 사탄을 닮아 불신과 반역에 물들어 있던 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춰주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위대합니다. 성령께서 자신이 기록하게 하신 말씀을 가지고 살아 운동하는 검처럼 사용하셔서 심령을 찌르시고 죄를 드러내시고 변화시키시는 능력이 위대합니다.

 

     참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의 위대함 안에서 가장 큰 기쁨과 안심을 누립니다. 그는 이 세상 어떤 위험한 것들보다 죄의 강력함이 위험한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거기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장 만족스러워합니다. 하나님이 다른 능력을 자신에게 베풀어주시지 않더라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여러 능력들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기를 구해야 하지만 이미 베풀어 주시고 계신 구원의 능력이 나를 가장 복되게 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구원의 능력 안에서 자유할 수 있고, 죄와 싸울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