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13 에베소서 1:15-19

따뜻한 진리 2023. 11. 26. 18:48

에베소서 1:15-19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행하고 계신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계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를 영원한 자신의 백성, 자녀들 삼으시려고 선택하셨고, 창조하셨고, 죄인이 되었지만 아들을 통해 속량하셨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영원한 기업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라며 충성하게 하시려고 확신을 갖도록 성령이 보증하십니다. 이런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해 행하시는 일들에 가슴 벅차 감격스런 복음을 앞부분에 쏟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성도들을 생각합니다. 자신이 위대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했는데 그것이 과연 성도들에게 있는지 생각한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먼저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복음 전했던 자들, 이 글을 읽는 성도들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 또 믿게 된 자들이 생겨났다는 소식들을 들은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심판 아래 있고 무지와 쾌락 속에서 멸망을 향해 가고 있지만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 자신과 함께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릴 자들을 생각하면서 바울은 안도와 감사와 기쁨을 얻은 것입니다.

 

     바울이 감사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성도들의 믿음이 사랑을 드러내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보면 바울은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단지 ‘나는 예수 믿겠다’라는 입으로의 고백이 아니라 다른 지체들을 사랑하는 실천으로 드러나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은 사랑을 낳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 어떤 일들을 행하시는지를 아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면 사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릴 앞날의 영원한 복을 계획하신 것과 우리를 아들 삼으시려고 참 아들을 희생하신 것에서 사랑을 봅니다. 또 그 아들인 성자께서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순종하신 것에서도 사랑을 봅니다. 또 성령께서 우리가 그런 복음을 믿게 하시고 마음에 증거와 확신을 주시고 죄와 싸우게 하시고 자녀의 형상으로 빚어가시는 것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자가 그런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그리고 믿을 뿐 아니라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함께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만들어 냅니다. 특별히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어 냅니다. 15절을 보면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성도들을 사랑하게 합니다. 우리가 낯선 곳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들 틈에 살고 있다가 한국 사람을 만날 때 기쁜 것처럼,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고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성도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보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이 더 많고 죄의 세력이 커질수록 성도는 다른 성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말하듯 바울은 자신의 편지를 읽을 성도들의 믿음이 행함이 있는 믿음, 사랑으로 증명되는 믿음이라는 것에 감사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바울이 본문에서 기도한 시점과 그 내용을 생각해보면 기도에 관한 교훈도 얻게 됩니다. 성도라면 기도의 필요성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깊은 묵상을 할 때, 생각할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그저 우리의 삶의 필요를 구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신의 필요한 것을 구하는 수준일 때 우리의 기도는 내용이 빈약해집니다. 자기 기도 제목만 가지고는 몇 분이면 기도 시간이 끝나기 때문에 기도를 충분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의 기도 제목을 모아서 기도 시간을 늘리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기도가 필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기도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설교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바울은 초반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복된 분이신지를 말했습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위대함, 영광스러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 안에서 누릴 영원한 기업을 말했습니다. 그런 후에 바울은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깨닫고 경험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사랑하는 성도들도 알고 경험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내용들이 성도들에게 깨달아지고, 믿음을 일으키고, 하늘 기업의 영광을 소망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19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삼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깨닫게 해주시기를,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임해주시기를, 눈이 밝아져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를 보게 되기를, 하나님이 주시려는 그 나라의 영광, 그 기업의 영광을 맛보기를 기도했습니다. 또 세상 어두움과 악한 힘들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을 알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지루함 없이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지식과 묵상이 풍성한 기도를 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그런 놀라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고소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회개와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이 그런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는 간청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를 시편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역시 교회를 위한 편지를 쓰면서 우리에게 복이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풍성한 깨달음들을 초반에 이야기했는데, 그러다 보니 바울은 성도들이 자기와 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지기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경험들이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바울은 성도들에게 사랑이 있는 믿음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이 믿어서 천국 가게 된 것으로 자기 바람을 다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깨닫기를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삼위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풍성히 알아가고, 삼위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업의 영광을 보게 되고,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들에서 삼위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을 깨달아가기를 구했습니다. 바울은 앞에서 말한 내용들이 자기만 흥분해서 떠든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그것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바라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지혜를 부어주시고, 눈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의 크기를 알게 해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바울과 한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구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며 세례받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앞에서 말한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들의 놀라움을 계속 발견하고 깨닫는 것도 너무나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임을 바울이 맛보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도 그런 은혜가 있기를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 우리에게서도 이뤄지기 원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랑하는 자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먼저 바울이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 묵상했을 때 그 내용들이 성도들에게도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내가 경험하는 이 은혜가 저들에게도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다른 영혼들을 위해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에 우리도 공감하고,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창조와 구원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의 현실적 필요와 구원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그들이 삼위 하나님의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것을 알아가고 찬양하도록 기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