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22 에베소서 2:4-7 (2)

따뜻한 진리 2024. 1. 28. 14:14

에베소서 2:4-7 (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성경은 인간이 가망성 없는 죄인이라고, 구원이 필요한 참혹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것을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긍휼히,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그 핏덩이의 몸은 울음소리와 움직임으로 자기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보여주지만 진짜 살아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어있는 채로 태어납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죽은 채로 살다가 몸마저 죽음을 경험하고, 결국 영원히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몸으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살아나지는 않았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실 때 겪으신 것을 우리는 함께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우리가 함께 죽고 함께 살았다고 바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여겨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죽음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의 혜택을 입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 교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라고 말씀하신 것,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이 가리키는 바입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가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1장 초반부터 이 연합의 교리를 계속 강조해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연합 교리가 담는 내용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의 정체성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 자체를 기뻐하실 수 없고, 자녀로 여겨주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께 연합, 연결되어 붙어있게 하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스러운 자녀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또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처럼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리셔야 할 승리와 생명과 영광을 우리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참 아들이신 예수님 곁에서 우리도 아들들,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데 예수님과 우리를 하나로 여겨주시는 것, 공동의 운명으로 여겨주시는 이 연합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이런 연합은 예수님과 성도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연합의 원리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먼저 아담과 모든 인류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각 개인이 에덴에서 선악과를 먹지 않았지만 모두가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죄인으로 태어나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한 사람과 모든 인류를 연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아담 한 사람이 모든 인류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이 아담과 모든 인류의 연합은 사탄과 모든 인류의 연합으로 연결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종하지 않고, 사탄에게 순종했기에, 하나님 대신 사탄을 주인 삼았기에 인간들은 사탄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사는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행합니다. 아담을 따라 사탄에게 연합되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2절과 3절이 말하는대로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불순종의 아들들로 살아가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를 위해 사는 것 같지만 주인을 섬깁니다. 하나님 아니면 사탄을 섬깁니다. 이 세상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탄과 연합하든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든지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탄이든 하나님이든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진영을 위해 헌신합니다. 첫 아담의 본성을 따라 죄인으로 태어나 사탄의 아들들로 살아가는 자들은 서로 회의를 하고, 의견 일치를 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하는 일로 반하나님적인 문화를 이룹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니 인생의 의미를 헛된 재미와 헛된 성취와 헛된 영광으로 채우려 하지만 무엇을 해도 허무함이 찾아올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삶이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망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죄책감과 불만 속에서도 그런 삶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자기의 어리석음과 죄책감을 건드리려 하면 분노를 쏟아냅니다. 또 남들을 악한 일에 불러들여 나만 이렇지 않다는 위안을 만들고, 죄책감을 더 큰 죄를 지어서 덮어 버리는 악을 행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을 망치는 술과 마약을 서로 권하면서 위로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그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가르치고 실천하게 하기가 어렵지만 악은 손쉽게 퍼뜨려 세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자기가 행하는 악한 일에 더 많은 자들을 불러들여서 용기를 얻고, 양심을 마비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런 죄성에 따라 인간들은 연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자들을 자기 아들에게 연합시키십니다. 붙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일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는 일을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시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우리 대신 지옥을 경험하셨고,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자기 죗값을 자기가 영원토록 치러야 하는 이 책임에 대해 죽었고, 사탄과의 관계도 끊어진 것입니다. 반대로 죽어있고 끊어져 있던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시 연결된 것입니다. 살아난 것입니다. 죄와 사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일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자기들끼리도 연합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연합합니다. 성도는 세상이 모르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한 것들에서 위로와 소망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함께 확인하면서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경험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연합한자들이 세상 속에서 모이고 연합하듯,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모입니다.

 

     사탄과 연합한 자는 아담이 범죄 후 하나님을 피해 숨은 것처럼 하나님에게서 도망치려 하고, 마치 타조가 자기 머리를 땅에 박고 숨었다고 여기듯 자기가 믿지 못하겠으니 하나님은 없다고 손쉽게 하나님을 제거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자이고,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달아나 숨을 수 없는 것을 압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기 위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일을 즐거워합니다. 또한 사탄과 연합한 자는 자신의 죄가 드러날 때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지적하시는 하나님이 부당하고 기분이 나쁘다고 반격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들춰내실 때 하나님을 병을 고치시는 의사처럼 여기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꾸짖음과 징계를 주시더라도 그것이 자신을 더 깨끗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는 약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사탄과 연합한 자는 죄짓는 일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악한 자들과 다니는 것을 즐겁게 여깁니다. 자신이 심판당할 일을 계속해서 쌓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자신의 양심을 어둡게 하는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죄와 싸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연합하여 살던 자가 이전의 삶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일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하시고, 새롭게 여겨주실 뿐 아니라 새로운 성향을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 편에서 주권적으로, 일방적으로 우리의 신분을 바꾸시는 객관적인 변화를 주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경험되어지는 주관적인 변화도 일으키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게 하시고, 함께 살리는 일입니다. 사탄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지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악하고 헛된 것을 계속 바라는, 영적으로 죽은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아무리 착하게 살고, 발버둥 치며 열심히 살아도 허무할 수밖에 없는 인생 속에서 참 의미를 발견하고 싶습니까? 결국 맞이하게 될 죽음,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달린 심판 앞에서 생명을 얻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죗값을 다 치른 것으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신뢰해야 합니다. 인간의 죄는 지옥을 영원히 겪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의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함께 처리되었습니다. 우리는 자기 아들 안에서 함께 심판 받은 것으로 우리를 여겨주시는 하나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죽은 자로 여겨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 주시는 하나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