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25 에베소서 2:8-10 (1)

따뜻한 진리 2024. 2. 18. 19:56

에베소서 2:8-10 (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지난 시간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두고 하나님께 도움을 얻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단지 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지옥 가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 그 은혜를 나타내신 하나님이 누구실까 궁금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 같은 죄인을 아들들 되게 하셔서 은혜를 나타내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힘써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자, 특권이고, 복된 일은 우릴 지으신 창조주이자 우리를 살려내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7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했고 이어서 8절부터는 하나님의 그 은혜로 인해 우리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되는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혜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과 자기 행위로 뭔가 이루려는 인간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8절,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8절에서 너희 즉 사람에게서 난 것과 9절의 행위에서 난 것, 자랑하게 만드는 것은 다 인간의 것을 묘사합니다. 바울은 그런 인간의 행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성도의 행함이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함의 열매를 분명 드러냅니다. 바울이 여기서 인간의 행위를 하나님의 은혜와 대립되는 것으로 보는 이유는 인간이 자기 행위로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래 자기 존재의 의미와 만족을 하나님 안에서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은 채로 태어나기에 자기 의미와 가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하고, 자기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만족할만한 변화나 실천이라도 하려고 노력합니다. 남들이 몰라줘도 선행을 하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삶을 살도록 본이 되는 부모를 만나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선한 노력에 보상을 잘 받는 환경에서 자라서 누가 봐도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해서 비뚤어진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둘 중 어떤 사람을 좋게 여깁니까? 당연히 앞에서 언급된 칭찬 받는 사람을 좋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아로 찍힌 사람보다 모범생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모두 부러워하는 길을 가고 있는 만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자신을 보지 못할 위험을 안고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성경이 인간에 대해 말하는 내용들을 들을 때 ’내가 죄인이라고?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선을 행하고 칭찬을 받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 자신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라면 악한 것입니다. 인간은 악인이든, 선인이든 자기 만족과 교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떤 인간들도 자기공로를 추구하는 삶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 종교마저 자기 공로로 작동합니다. 세상 종교들은 자신의 노력, 수행과 고행과 깨달음의 노력으로 고통과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종교를 생각해보십시오, 무속종교를 비롯한 불교는 철저히 자기 공로, 공덕을 강조하는 신앙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래 신약교회를 잇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였던 카톨릭은 교리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지만 철저히 개인 공로의 신앙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속한 개신교 복음주의 교회들 역시 공로주의 신앙에 젖어 있습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지식도 없고,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 빈약한 상태에서 그냥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으로 자기 신앙이 안전하다고, 자기가 분명 구원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신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교회 다닌 것, 어떤 직분을 갖게 된 것, 어떤 제자훈련을 받은 것, 금식 기도 많이 한 것, 교회에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 것이 자신의 뿌듯함이 되어 신앙생활을 유지하게 만들고, 자기가 쌓아온 업적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계속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일평생 아무리 착하게 살고,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도, 목사에게 칭찬받고 교회가 성장하는데 많은 공로를 쌓아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는 은혜로 시작했고, 계속해서 은혜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타락하기 전 죄가 없던 아담도 셀 수 없는 은혜를 누리고 있었는데, 타락해서 죄인이 된 것은 더 크고 놀라운 은혜가 필요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셔야 하는 어떤 근거도, 의무도 없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 사라졌고, 은혜를 거두는 것이 차라리 타당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실만한 선한 것, 인정하실만한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로 인해 이미 죽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어있었으니 하나님이 우릴 보고 기뻐하실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심판받아 마땅한 자들이고 하나님의 귀한 독생자를 희생시킬 만한 이유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구원해주시니 은혜인 것입니다.

 

     바울은 3절에서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로마서 5장 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전적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을 선택해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뜻에 의한 것입니다. 또 우릴 위해 죽으신 성자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입니다. 또 성령이 각 사람 속에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도록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수고와 협력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 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어떠함이나, 우리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달렸다는 사실은 단지 우리가 구원에 있어서 무력하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구원이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결코 변경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달린 것이라면, 심판 때까지 우리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하나님이 모두 지켜보고 구원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우리 행실이 아닌 오직 은혜로 결정하십니다. 그래서 안심할 수 있고, 무한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할 것 없이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나아가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조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선택하시고, 믿음 주셔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나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있어서 차이라고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 외에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는 날 선택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 안타깝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고, 우리의 됨됨이나 행위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불안함 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이 구원은 이 세상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이고 우리를 차별화시키는 특권이고, 영원한 복을 얻은 것이지만 우리는 구원받은 우리 자신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