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죄에 관하여 (3) 로마서 5:15-17

따뜻한 진리 2024. 5. 18. 21:53

죄에 관하여 (3)    로마서 5:15-1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아담은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었으니 하나님을 닮은 일을 해야 했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죄를 경계하고 물리쳐야 했습니다. 지난 시간의 내용대로 아담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형상, 지상의 왕,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영광스러운 존재였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따라 해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아담은 하나님을 닮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처럼 생명을 낳는 일과 하나님과 함께하는 에덴을 돌보고 지키는 일을 하면서 그곳이 확장되도록,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일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담이 일만 하는 기계는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쉼이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일곱째 날 안식하신 하나님처럼 아담은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쉼을 누려야 했습니다. 일하는 것뿐 아니라 안식도 하나님을 닮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9-11절을 보면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아담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마치고 안식의 기쁨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아담은 그런 안식을 바라며 에덴을 거룩하게 지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제사장이 성전과 백성의 거룩을 위해 일하며 죄를 처리하고, 죄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막았던 것처럼 에덴의 제사장 아담은 자신과 에덴에 죄가 침범하지 않도록 다스리고 지켜야 했습니다. 에덴에 있던 피조물 중 인간만이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기에 에덴의 어떤 돌이나 식물이나 동물은 죄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에덴이 하나님과 아담이 함께 하는 장소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죄의 통로는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아담은 무엇보다 자신을 죄에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의존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했습니다.

 

     아담은 착각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었고, 지상에서 거의 하나님 같은 권한과 영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몸소 느끼면서도 교만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개가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사람인 줄 알고 주인을 넘볼 수 없듯, 로봇이 사람보다 힘과 정보 처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 되듯이 아담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이 엄청난 것을 깨닫고 경험할수록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해 놀라고 감사해야지 자신이 스스로 생겨났다고, 세상의 주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담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계속 복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의존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그런 태도를 항상 잊지 않도록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두셨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경고를 하시면서 금지하셨습니다. 아담은 그 명령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거룩하고 의로운 상태로 만들어졌지만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더 나은 상태가 될 수도 있었고, 이미 있는 것마저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죽음으로 경고하신 것을 우리는 행위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은 이 행위언약에 순종해 하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죄의 위협이 찾아올 때 그것을 물리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보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자신이 기준이 되겠다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 한다면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담은 시험을 통과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훌륭하게 창조되었지만 그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되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하고, 순종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시험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간이 정해져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아담은 순종을 통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자기 후손들도 복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죄를 물리쳐야 했습니다. 첫 아담에게 주어진 이 시험의 조건은 둘째 아담인 예수님께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시험을 받으셨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탄을 이기신 것처럼 첫 아담은 제한된 시험으로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을 시험하신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을 시험하신 것은 그를 위태로운 긴장 상태에서 괴롭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아담을 높이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그냥 용돈을 줄 수도 있지만 작은 일을 시켜서 그 수고한 대가로 돈을 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아이는 자기 수고를 통해 보상을 얻지만 부모가 용돈을 줄 것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얻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 안에서 자기 공로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아이만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도 자신이 요구한 방법에 자녀가 순종한 것에 기뻐할 뿐 아니라 아이가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성취를 하는 것을 보면서도 기쁨을 얻습니다. 자녀가 경험하고 누리는 수고와 보상의 기회는 부모가 제공한 것이지만 자녀는 그 과정에서 칭찬을 받고, 공로를 얻습니다. 아담은 그런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두고 아담과 맺으신 것은 은혜로운 행위언약이었습니다. 아담이 그 시험을 잘 통과했어도 그것은 겸손히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만 가능한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공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칭찬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를 이기고 순종하여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자녀의 잘 됨을 통해 영광을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의 속성인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은 하나님의 은혜에 둘러싸여 있었고,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순종으로 이기신 것처럼 아담도 선악과 시험을 완성하고, 안식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담의 후손들도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었지만 아담은 결국 넘어집니다. 죄를 짓습니다.

 

     아담의 죄를 통해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아담의 죄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되고 유전된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각 사람의 죄, 나의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악행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뭐’라고 생각할 만한 삶의 태도 역시 다른 사람들의 죄를 북돋고, 합리화하는 재료들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하나님을 높이는 삶,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삶이 아닌 나 자신을 높이는 삶, 이기적인 삶, 자기를 자랑하는 삶은 주변 사람들을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구원과 무관하도록 돕는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에게 에덴을 지킬 책임이 있었던 것처럼 가정을 지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아담의 죄를 통해 적용할 수 있는 다른 하나는 어떤 은혜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존하는 믿음 주시는 것이 가장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수많은 은혜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닌 불신과 교만이 그를 사로잡았을 때 죄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과 의존과 순종이라는 은혜가 없으면 어떤 큰 은혜가 주어져도 우리는 아담처럼 넘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건강하게 하시고, 부유하게 하시고, 안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다른 은혜들이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자신이 잘난 줄 알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작은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라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다른 은혜들이 클수록 시험도 커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 주신 것이 가장 큰 은혜인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