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죄에 관하여 (4) 로마서 5:9-10

따뜻한 진리 2024. 5. 26. 21:49

죄에 관하여 (4) 로마서 5:9-1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더 잘 알고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기 위해 그것을 거부하는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 죄를 정직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자기 죄를 정직하게 마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가 원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또 죄를 다루더라도 사람들끼리, 우리끼리의 죄를 해결하고 화해하면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제대로 다룬 것이 아닙니다. 사람 사이의 죄도 바르게 다뤄야 하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는 더 크게 다뤄져야 합니다. 죄는 단순히 우리의 마음에 있는 이기심, 서로에 대한 미움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반감이 바탕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사이의 죄 문제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죄 문제가 잠깐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음에 품은 죄, 내가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지은 잘못, 자기 몸으로 느끼고 있는 고통과 연관해서만 죄를 생각하지만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일어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욕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셔야 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자신이 살아계심을 충분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죄책감, 두려움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자폐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폐가 무엇입니까? 멀쩡히 눈앞에 살아있는 다른 사람의 상태, 기쁨과 슬픔 등에 거의 또는 아무런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폐증인 자녀는 자기 부모가 겪는 여러 감정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세계에만 빠져있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자폐 증상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고, 무감각합니다.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 무감각이 하나님에 대한 자폐 증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의 범죄에 대해 진노하신 것과 그 때문에 온 인류가 지옥에 가게 된 것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죄인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아담의 범죄가 심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그저 탐스런 과일 하나를 먹은 일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참혹한 범죄들에 비하면 아담의 타락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하나님이 지나친 진노를 쏟으신 것, 과잉 반응을 하신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하셨는지, 그리고 그 기대를 인간이 어떻게 저버렸는지를 공감하지 못하는 자폐 상태로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먹은 것은 인간이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법 전체를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담의 원래 마음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돌판에 십계명이 새겨졌던 것처럼, 거듭난 자의 마음에 성령이 새겨 주시는 하나님의 법이 첫 아담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죄로 물든 인류가 하나님을 향해 자폐 상태인 것과 달리 아담은 하나님과 교감하고, 마음의 법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는 행위를 통해 아담의 변질 된 마음이 드러났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이익만을 사랑하고 추구하며 스스로를 높이려는 그의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의 첫 계명,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내용을 위반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담은 성전인 에덴동산을 돌보는 선지자이자 제사장, 왕으로서, 해야 할 일과 선악과에 관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담은 그런 일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높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에덴 안에 죄가 들어오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또한 아담의 불순종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은 자신의 존재와 삶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사탄을 높이고, 그 자신이 사탄의 형상을 닮은 우상이 되어 하나님께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 것이 아닌 명예를 실추한 것이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셋째 계명을 위반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아담은 순종을 통해 그의 의무이자 특권인 안식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처럼 쉼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죄로 좌절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닌 자기 방법으로 완성, 안식, 쉼을 얻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넷째 계명도 어긴 것입니다,

 

     또한 아담은 자신의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십계명이 등장하는 신명기 5장에서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담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신 에덴에서 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의 육신은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아담은 자기 후손들에게 생명을 물려주어야 했는데 자신의 죄와 죽음을 가져다주어 그는 마귀와 다를 바 없는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이는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또한 아담은 하와를 향하여 남편다운 거룩한 질투심과 사랑을 품고서 아내 하와를 뱀으로부터 보호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와가 영적인 간음을 하도록 방치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일곱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또한 아담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나무의 열매, 자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먹음으로써 도둑질하지 말라는 여덟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또한 아담은 뱀이 하와를 속이지 못하도록 막고 진리로 맞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거짓에 넘어가는 일을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도 그 거짓에 참여하여 열매를 먹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탄을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담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닮은 모습으로 거짓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아담은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아홉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끝으로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 자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선악과에 손을 대,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아담의 죄는 십계명 전체를 어긴 것이고, 하나님의 법을 부당하다고 여기고 저항한 것이며 하나님을 모욕한 것입니다. 아담은 적인 사탄을 모욕했어야 하는데 자기를 있게 하신 하나님을 모욕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가 부모를 모욕한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이 아담의 무거운 죄가 모든 사람에게 임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에게 물려받은 실제 죄를 짓는 죄성, 죄로 오염되어 사람들이 서로를 괴롭게 하는 이 죄성도 비참하고 끔찍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품으시는 진노,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죄책이 더욱 두렵고 비참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지른 죄로 인한 고통과 미움과 불안은 죽음으로 끝이 나고 그때는 더 이상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진노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악한 죄성만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다. 첫 아담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거룩한 분노와 저주에 대한 책임인 죄책도 모두가 다 아담 안에서 함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균이나 질병을 없애듯 단지 우리가 가진 죄성을 없애는 것만이 구원이 아닙니다. 아담 이래로 죄인인 우리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구원의 가장 큰 필요입니다. 우리는 죄책을 해결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불의한 자가 다시 의롭게 되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기쁨이 될 수 있는가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칭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모두 범했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우리가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인정하고 시인하며 자신의 죄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절망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