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관하여 (6) 예레미야 4:22; 호세아 4:6-1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도록 계획된 사람들이지만 아담의 죄로 인해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영혼만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라 몸도 죽음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또 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고 영원한 고통을 겪기 때문에 죽음은 비참한 것입니다. 사람은 이러한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고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알고 의지해야 하는데 죄는 그러한 능력마저 마비시켰습니다. 죄는 사람에게 있는 지적 능력과 감정과 의지를 부패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 영혼의 기능인 지정의 중에서 지, 이지(理智)라고 불리는 것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지란 이성과 지혜를 말합니다. 또는 지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에게 없는 이성을 가지고 자기 주변의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알아보고, 이해하고, 정리하고, 판단하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러한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수행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 이성이 어두워졌습니다. 어찌 보면 뱀의 말대로 사람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대단해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성을 사용해 세상의 많은 것들에 대한 지식을 쌓고, 깨닫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인인 자신의 비참함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길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일에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 아니라 현세에서 복을 얻는 일에도 어리석음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적인 능력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자기가 똑똑하다고 자신하지만 젊은 날을 허비하고 나서야, 자연을 망가뜨리고 나서야, 범죄와 패륜으로 사회가 무너지고 나서야, 전쟁으로 망하고 나서야 후회합니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일들 즉, 탐구하는 일과 지혜를 얻는 일과 판단하는 일과 상상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해야만 건강 바르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똑똑함을 신뢰하면 후회와 멸망 뿐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해서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어두운 상태에 있는 죄인들을 위해 계속해서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같은 사람들에게 오셔서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죄인인 사람들의 부패한 상태를 깨닫게 하셨고, 구원자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성막과 제사라는 모형으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치 시력이 거의 없는 자에게 만져볼 수 있도록, 거의 들리는 자의 귀에 큰 소리로 말해주듯 하나님은 가장 필요한 지식을 사람에게 가르쳐주셨지만 오해하고 악용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셔서 하나님 없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헛된 것이기에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자신의 계획을 알리셨습니다.
어두운 인간의 지성에 빛이 되신 것은 무엇보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죄인들이 무지해서 하나님에 대한 감각과 지식이 없으니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 눈에 보이게 오신 하나님이고, 어두운 죄인들의 상태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신 분이시고, 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구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그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이 말하듯 참 빛이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을 비추셨지만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맹인의 눈에 흙을 발라 주시고 씻게 하셔서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을 생각해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눈 뜬 자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 하자 오히려 그 눈 뜬 자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고, 바리새인들의 믿음 없음을 꼬집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자존심과 권위와 생존 방식을 지키기 위해 아무 잘못이 없는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드러날수록 죄인들의 어두움은 더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죄인은 단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고, 적대시합니다. 타락한 사람의 지성, 이지는 소극적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않으려고 거부합니다. 없애려고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죄로 인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악해졌습니다.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성은 현대 문명을 이룰 만큼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타락, 죄 때문에 이성, 이지가 사라지거나 약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하기 위해 교활한 지성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어느 생명체보다 탁월한 지성을 가지고 악을 행하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감각이 없고, 관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이상하게도 악한 것에는 본능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쉽게 배웁니다. 선한 것은 아무리 본을 보여줘도 배우려 하지 않지만 악한 것은 숨길수록 호기심을 갖고 순식간에 따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비는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판타지, 점, 운세, 전생, 헛된 신비에는 호기심을 갖고 몰입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듣기를 거절하는 자들이 이단에는 잘 넘어갑니다. 성경과 교리를 배우는 일은 힘들어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려운 것을 배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 다른 사람의 죄는 놀랍게 잘 비판합니다. 뱃속 아기를 낙태하는 것이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반려동물은 조금이라도 함부로 하면 학대라고 생명을 경시한다고 난리를 칩니다. 자기들이 모순되고 어리석은 짓을 하면서도 모르고, 뻔뻔합니다. 그렇게 인간의 지성, 이지는 타락했고 왜곡되어 있고, 반하나님적입니다.
죄로 인해 어두운 상태에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자신에게 구원이 긴급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각할, 알아챌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이성은 실컷 똑똑한 채를 하지만 결국 자유가 아닌 속박을, 평등이 아닌 차별을, 질서가 아닌 혼란을, 인권이 아닌 학대를, 생명이 아닌 죽음을 결과로 얻게 될 뿐입니다. 우리의 지식, 지혜는 그 자체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듯 여호와를 아는 것,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고 지혜이고 살길입니다(잠 1:7; 사 11:9).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알아본 자만이 자신을 바르게 알 수 있고,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고, 바른 지식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지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순종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자신의 타락한 지성을 가지고 헛된 소망을 품고 하나님 없는 행복을 추구하고,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헛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사실을 근거로 바라고 소망을 갖는 일에 지성을 사용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부어주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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