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착함에 관하여

따뜻한 진리 2009. 5. 14. 16:27

모든 인간은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깡패들도 착하게 살고자 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웃기려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차카게 살자'라는 문신을 새긴 장면이 나온다.

악한 지도자들에게도 착한 부하들이 있다.

부하들에게 만큼은 그 악한 지도자도 '착한 분'으로 인정받는다. 또 인정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지막지한 악한 일을 하는데 도와줄 조력자들을 데리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역사상 악한 지도자들로 평가되는 지도자들도

그 직속의 부하들, 측근들에게는 '착한 분'으로 인정받고 충성심을 얻는다.

 

인간이 착하려고 하는 이유는 철저히 생존 본능이다.

그래서 착함의 기준은 권위의 대상과 상황에 따라 늘 변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거듭나지 않는다면 착함은 착함이 아니다.

그 착함은 구원과 상관 없이 생존과 인정으로 '자기 의' 를 쌓는 일에 사용될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대로 우리의 착한 공로로는 구원 받지 못한다.

그런 착함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구원과는 멀어지고

그토록 과학적이라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대로 착한 아이 신드롬에 빠지게 될 뿐이다.

 

예수님은 착하셨다.

얼마나 착하셨냐면 속을 줄 다 아시면서도 베풀어주셨다.

얼마 있으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군중들로 돌변할 무리들이지만 그들이 배고플 때 먹이실 만큼 착하셨다. 베드로에게도, 가룟 유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왕으로 삼고, 자신들의 인정과 높임을 줄테니 원하는대로 해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셨다. 사람들에게 나쁜 놈이 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착하셨다. 하나님께 착하셨다.

 

분별없는 착함은 착함이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는 착함은 그 어떤 은혜와 평화를 조장한다 하더라도 착함이 아니다.

예수처럼 착할 때 우리는 죽는다. 입지가 좁아진다.

속아주고, 또 하나님의 편에 서서 No! 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거듭난 착함을 추구하며 살 때 진정 '착하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누구에게? 바로 하나님께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을 들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착하시다. 그 착하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주장하는 것이 착한 일이다. 그 착하신 하나님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착한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세상을 향해 착한 목사, 착한 성도가 참 많다.

아니 그 수준도 안되는 일들이 터질 때도 빈번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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