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중요한 기술이다.
그래서 설득에 관한 여러 책들이 성공과 자기 개발과 연관하여 많이 읽히는 것 같다.
설득 이론,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제시한 의견이 상대방이 기대하는 자기 이익에 충실하며,
인간 본성적인 심리적 만족을 주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장 옳은 것, 선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명백한 것, 진실한 것에 설득당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결단을 하려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오히려 인간은 설득보다는 속이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속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감쪽같이 속는 것을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웃음을 참으며 그 기법을 이용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각성' 가운데 있어서 외롭기 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집단적 착각 속에 참여하길 원한다.
그 착각 속에서
서로를 '설득'하기를 즐거워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설교하다보면
십중팔구 은혜 받았다는 말 뒤에 여전한 인간의 지혜가 설득의 승자로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니가 무슨 얘기하는 줄은 알아! 그런데 그렇게 살아지냐?"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결정하는 기존의 삶이 훨씬 낫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인간의 지혜이다.
세상 속에서의 생존방식을 지지해주고,
인간의 자기 중심적 심리를 이용해 적당히 어루만져준 다음
은근슬쩍 이익을 갈취하려고 하는 설득의 방식은
결국 인간을 파괴할 뿐이다. 세상을 더욱 음흉한 곳을 변질시킬 뿐이다.
참으로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은
가장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늘 인간을 설득하시는 일에 실패하시는 것 같다.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설득은 무시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설득을 무시하는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하나님의 모든 경고와 약속을 포함한 설득하심과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더욱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
죄인을 위한 구원의 필요성과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을 향한 심판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최후의 심판은 인간 편에서 어떠한 핑계도 댈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총체적 설득에 대한 반응의 결과를 집행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그 날에 결국 모든 인간들은 더 이상의 설득이 필요 없이
하나님이 늘 옳으셨고, 승자이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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