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부전자전이 드러나다 (요 8:31-58)

따뜻한 진리 2015. 5. 24. 22:10

요한복음 8:31-5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디로부터 오셨으며, 어디로 가시는지를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어디에서 났고, 어디로 가는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사람들 모두를 알고 계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모를 뿐 아니라 자신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가르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고 30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성경이 요구하는 참된 믿음의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예수님 자신의 정체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시자,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반응으로 질문을 합니다. 그럴수록 예수님의 설명은 더 구체적입니다. 본문 마지막에는 그들의 믿음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한다고 말씀하셨는데, 36절에 가면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이라는 말씀으로 진리가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임을 설명하셨습니다. 즉 진리이신 예수님 자신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과학적, 철학적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을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거기 있던 사람들도 그것을 물었습니다. 33절을 보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우리가 자유롭게 된다고 말씀하십니까하고 그들이 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묶여 있는 종의 상태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긴 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자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말로 그들이 죄에 묶여 있는 종의 상태라, 그런 종은 영원히 집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죄를 좀 지어도 노력하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신 것입니다. 종의 신분에서 자기 힘으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은 죄의 노예라는 뜻입니다. 수님께서는 그런 죄의 노예인 사람을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실 때 거기 있던 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33, 39)이고, 하나님의 자녀인데(41) 왜 우리가 죄의 종이냐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을 운운하며 자신들의 소속과 우월함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먼저 39절에서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자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믿었던 행위들을 그들이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9-40). 오히려 그들의 소속, 그들의 아비는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44). 그들은 욕심대로하는 그 아비를 따라 행하기 때문에(44) 그들의 마음에는 주님의 말씀이 거할 곳이 없었고(37), “살인한 자인 그 아비 사단에게 속했기 때문에(44)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이고(37, 40), “거짓말쟁이그 아비를 따르기 때문에(44)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45)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나님이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했습니다(4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면 그 아버지의 아들인 예수님을 가족을 알아보듯 친밀하게 알아보고 믿었을 것이라는 말씀하셨습니다(42). 또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믿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진리인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아닌 증거라는 것입니다(46-47).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정통성과 권위를 그런 식으로 무너뜨리자 예수님이 귀신들린 것이라며 애써 무시하고자 했습니다(48, 49, 52).

 

    그렇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과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관련이 없음을 드러내셨고, 하나님아브라함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바로 자신임을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49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시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0, 54절에서는 예수님이 스스로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하려고 거짓과 탐욕으로 덮으려 해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세상 가운데 드러내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예수님을 보증하시고, 높이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긴밀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51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을 초월한 생명의 주관자라고 말씀하셔서 죽은 아브라함보다 이전에 계셨고, 앞으로도 계시는 분이며, 자기를 믿는 자를 영원히 살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5절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의 날()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기뻐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사역이 이 땅에 이뤄지는 것으로 성취되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을 이삭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낳을 수 없는 생명을 주실 것임을 이삭을 통해 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브라함은 죽어서 예수님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계셨고, 아브라함을 만나셨던 분으로서 그들 앞에서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 당신이 나이 오십도 안 되었으면서 그런 말을 하냐며 돌로 치려했고, 예수님은 성전에서 피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말로만 하나님이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했지 그들의 태도와 행실은 창조주 하나님과 조상 아브라함의 명예, 영광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대하는 것에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자신들의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기본적으로 최소한 한 인간으로서 공의롭게, 정당하게 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는 오직 자신들의 것을 지키려는 욕심과 거짓과 죽이려는 의도였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을 돌로 치려하면서 끝까지 자신들의 아비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진정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아브라함의 어떤 점이 그들에게서 발견되었어야 합니까? 아브라함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사람이 의존하는 것들을 버렸습니다. 그는 부모, 친척, 종교, 거처를 버렸습니다. 100세까지 자식이 없었고, 주신 아들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하시자 바치며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이 기대고 의존하는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진정한 보장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죄로 타락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만이 진정한 안식임을 믿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 손길 이외에 자신과 세상에는 의지할 것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런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속박되어 있습니다. 욕심과 거짓과 살인이라는 자기 생존을 위한 굴레에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어둠 속에, 죄의 지배 속에 있는 것을 모릅니다. 알아도 이 세상에 그냥 그렇게 적응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유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상태를 비추십니다. 자신들의 어둠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은 부인했습니다. 더욱 어둠 속으로 숨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체를 깨달아가고 있습니까? 비참한 죄의 노예라는 것을 깨닫습니까? 그럴 때 빛이신 주님은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실 뿐 아니라 해결하십니다. 고치십니다. 살리십니다. 주님을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이신 줄 알게 되고, 나를 다시 살리시는, 건져내시는 분인 줄 믿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