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12-3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앞의 7장 37절에서 초막절 명절 끝 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뒤에 이어진 39절은 예수님이 주시는 그 “물”이 성령을 뜻한다고 해석해주고 있는데, 아직 성령이 사람들에게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과 연결해서 본문 12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어둠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자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물과 빛을 사용하셔서 자신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것을 교훈하신 동시에 성령이 없고, 영적 어둠 가운데 있는 그들의 상태를 암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 다른 증언자 없이,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의 보증이 되신다는 논리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가르치셨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또 그 점을 공격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정당하기도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에게 큰 돈을 빌려달라고,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면 우리는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신뢰할 만한 증거, 보증, 보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dl 상식인데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 보증을 주장하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지적에 따르면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증이 상식이 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 뿐 아니라 잘 아는 사람도 신뢰할 수 없는 거짓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그럴 듯하게 보임으로 자신을 믿게 하려는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누구신지를 증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성부 하나님을 보증으로 제시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확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만이 그 보증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수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정직하게 사실에 입각해서 예수님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과 권위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예수님을 내려다보는 입장에서 판단하려 했기 때문에 틀린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판단이 “육체를 따라 판단”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왜 육체를 따라 판단한 것이냐면 그들의 판단은 자신들의 육체적 욕망, 자신들을 지키려는 본성에 따른 것입니다. 또 그들이 예수님을 육체의 수준, 인간의 수준으로 보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도 판단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은 판단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정확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까지 모두 아시기 때문에 판단을 내리실 필요 없이 그냥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아시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디서 오셨는지를 아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라는 표현이 16, 18, 26, 29절에 나오는데 이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오셨으며, 지금도 하나님과 함께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 예수님을 잡으려는 자들은 그런 설명을 듣고도 예수님이 어디서 오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19절).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도 모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오셨는지 모를 뿐 아니라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시듯 모든 사람도 당연히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죄인인 인간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지식으로는 그것을 알아도 행위와 실천으로 고백하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이 세상과 자신들을 창조하신 것을 알았지만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듯, 그리고 예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하였고(23절), 죄로부터, 마귀로부터 왔습니다(34, 38, 41, 44절). 죄 때문에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본성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으로 알아봐야 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19절).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출처를 모르는 것입니다. 마치 이산가족이 된지 오래 되어 진짜 가족을 몰라보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를 아셨을 뿐 아니라, 두 번째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14절). 예수님은 21절에서 “내가 가리니~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28절에서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로 가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곁으로 가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만 자신의 죽음을 알고 계셨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들은 자들도 예수님의 그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22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하고 의문을 가진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를 죽인다는 거냐고 갸우뚱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일로 죽는다고 말하는지 일반 백성인 유대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도층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계획을 알고 계셨고, 종교지도자들도 자신들이 꾸미고 있는 일을 당연히 알고 있음에도 아닌 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사람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들이 마귀에서 온 자식들임을 알고 계셨고,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일 것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그들이 어디로 갈지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으로 함께 가지 못하고 멸망에 처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아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아셨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오셨으며 어디로 가시는지 알고 계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들을 숨김없이 다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은 알지도 못했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또 자신들이 예수님께 행하려는 일을 알면서도 그 죄는 모른 척 숨겼습니다. 그들은 21, 24절의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의 말씀대로 정말 자기 죄 가운데 죽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 아셨으면서도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잘난 체하듯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16절에서 ‘내 판단이 참된 것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26절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왜 믿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 누구도 자기 자신을 모르는데 그분만이 자신을 완전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만이 나를, 우리를 완전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근원과 상태와 장래를 완전히 알고 계십니다. 그런 주님을 아는 것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 처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님은 빛이십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심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고, 또한 그 빛이 나에게 비췸으로 나의 실체를 알게 하시기에 우리는 주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숨어 있을 수 없고 주님께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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