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7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기드온이 전쟁에 참여할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통해 모인 사람들의 숫자를 줄이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드온이 두려운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더니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물가로 인도하게 하셨는데 거기서 물을 마실 때 물을 떠서 개가 핥듯이 마시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를 따로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물을 핥아 마신 자들이 삼백 명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삼백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물을 핥아서 마신 사람들을 뽑으셨을까요? 핥아서 마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마신 사람들보다 어떤 장점이 있는 것일까요? 흔한 해석 중 하나는 무릎을 꿇는 것은 전쟁에서 군사가 주변을 경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물을 떠서 고개를 들고 개처럼 핥아 마셔야 군사다운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근거가 없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삼백명을 구별하신 목적이 군사의 기본기를 가진 사람을 뽑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한 남자들의 숫자를 줄이려 하셨습니다.
남은 삼백 명은 정예요원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어쩌면 그 이하의 사람들을 뽑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백 명만 원하셨고 거기 있던 사람들의 여러 가지 특징 중 물 마실 때 물을 떠서 핥아 먹는 사람의 수가 삼백이라서 그 기준으로 나누라고 하신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대로 기준은 군사적 탁월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숫자였습니다.
기드온은 남은 삼백 명과 함께 미디안이 진치고 있는 골짜기 위에 있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일어나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어서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이 앞의 이야기에서 계속 주저하고 두려워했는데 여기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을 기드온 너의 손에 넘기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도 기드온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거든’이라는 말씀으로 기드온이 그런 자신을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을 하나 시키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하와 함께 미디안 진영 근처까지 갔는데, 거기서 미디안 연합군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다시 확인합니다. 그런데 한 미디안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자기 꿈 이야기를 한 것을 기드온이 엿듣게 됩니다. 그 꿈은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와 장막을 무너뜨린 내용인데, 그것을 들은 친구가 그 꿈은 하나님이 기드온의 손에 미디안을 넘겨주시는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런 꿈을 꾸고, 그런 해석을 했다는 것은 미디안 군사들이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드온은 그 이야기를 듣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안고 돌아옵니다.
기드온과 삼백 명은 전쟁을 위해 나팔과 횃불을 숨긴 항아리를 준비합니다. 그들이 밤중에 미디안 진영으로 가서 가지고 있던 나팔을 불면서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미디안 진영에서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미디안 군사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죽였습니다. 기드온의 방법이 놀람과 혼란을 주기는 했겠지만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사들의 정신과 감각을 혼란시키셨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드온은 도망가는 미디안 군사들을 진멸하기 위해 처소로 돌아갔던 군사들을 다시 소집해서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죄악 속에서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기드온을 선택하셨고 기드온을 용사라고 부르셨지만 그를 인간적으로 강하게 하셔서 용사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무능한 자신의 상태를 알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상대해야 할 미디안 연합군은 8장 10절을 보면 13만5천 명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 모인 남자는 처음에 3만2천 명이었습니다. 미디안의 4분의 1정도 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일차로 돌려보낸 자가 2만2천 명이었고, 남은 1만 명 중에서 다시 9천7백 명이 돌아가서 3백 명이 남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3만2천 명 중 3백 명이 남았으니 하나님께서는 거의 1퍼센트만 남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의 크기에 비해 이스라엘, 기드온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더욱 두려움이 커지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서 “만일 두려워하거든”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두려움을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2절을 보면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자기 힘으로 미디안을 무찌른 줄 착각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신뢰하기보다 외부적인, 인간적인 증거들만을 요구해왔는데, 그것은 계속 그 자신이 판단자가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승리 가능성, 하나님이 정말 도와주실 능력이 되시는지, 신뢰할 만한 분인지 기드온 자신이 판단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하나님께 그 증거를 요구한 것입니다. 6장에서는 기드온이 먼저 증거를 요구하면 하나님이 응하셨는데, 본문 7장에서는 그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미디안 병사의 꿈 해석을 기드온이 듣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배려였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더 이상 어떤 믿음을 기대하지 않으시고, 그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였겠습니까?
기드온은 자신에게 적들을 넘겨주셨다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적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엿보고 더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어떤 행동을 합니까? 17절을 보면 300명의 군사들에게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라고 말합니다. 18절을 보면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을 언급해서 다행인 것 같지만 자신을 추가시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이 막으시려고 했던, 하나님을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는 일이 기드온에게서 나타난 것입니다. 다음 8장에서 살피겠지만 기드온은 처음 등장할 때 소심하고, 주저하는 자였는데 미디안과의 전쟁 후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오히려 가립니다.
하나님께서 외부의 적 미디안으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 불순종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기드온은 그런 외부의 적을 알았지만, 여전히 내부의 적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자신, 하나님을 계속 무시하고 있는 자신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드온의 상태였고, 이스라엘의 상태였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거대한 적은 미디안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 기드온 자신도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자신이 하나님의 적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 무너져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외부의 적들, 내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수록 착각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 나를 사용하신다는 증거가 우리를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고백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나를 통해서 하셨다.’는 우쭐한 마음, ‘내가 괜찮아서 쓰임 받았다.’는 잘못된 의식이 생깁니다. 그 사람은 이전보다 더 심각해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적들과 사사들을 사용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죄를 회개하고,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적들은 그냥 무찌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우리를 다루시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나, 하나님을 불신하는 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나를 발견하고 인정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진짜 싸움입니다. 그 전쟁을 시작하는 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사일 것입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신자들이 배신을 당하다.(삿 9장) (0) | 2016.05.01 |
---|---|
변해버린 기드온 (삿 8장) (0) | 2016.04.24 |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삿 6장) (0) | 2016.04.10 |
탐탁지 않은 사사들 (삿 4-5장) (0) | 2016.04.03 |
예측할 수 없는 징계와 구원 (삿 3장) (0) | 201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