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8:1-2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본능적으로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보다 그 사람이 가진 것에 마음을 뺏기는 일도 생깁니다. 물질에 의해 인간 자신은 소외됩니다.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진 것 때문에 그한테 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도 많은 것을 가진 누군가를 그렇게 대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얻고 싶어서 그 사람한테 잘 하다가 결국 얻게 되면 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존재 자체를 진실하게 여겨주는 사람을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숨기고 만남을 시작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또 부모들이 자식에게 유산을 빨리 물려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찍 물려주면 자식들이 부모를 나몰라라 하는 경우들을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들이 우려하는 그런 자녀가 성경에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 비유가 그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청했고, 그것을 가지고 자기 맘대로 살기 위해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를 버린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유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소유 때문에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인격을 소외시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이유가 그저 잘 먹고 잘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까? 그게 목적이었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할이 끝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좋아 보이는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하고 힘들 때만 의지하는 자선사업가, 후견인이 아니라 영원한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탁월해져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모세는 백성들에게 광야생활을 기억하라고 말했을까요? 아무리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온갖 것을 소유한다 해도 하나님만이 인간의 최종적인 만족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도, 아무리 풍족해도 분명 어떤 새로운 결핍, 불안, 욕망을 느낄 것인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상에 빠질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 자체는 인간적인 기대와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고생스런 환경이었습니다. 그 혹독한 시련 때문에 어떤 자들은 하나님이 그 곳에서 자기들을 죽게 하실 것이라고 원망할 만큼 불신을 품기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광야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2-3절 그리고 16절이 말하는 대로 겸손하게 낮아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광야에서 40년만 잘 참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면서 견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백성들이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조금만 견디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 때문에 가나안의 복이 과연 주어질 것인지 절망하게 될 만큼 기대를 버리고 겸손하게 된 것입니다.
광야만 메마르고 척박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마음 상태도 메마르고 척박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4절, 15절, 16절이 말하는대로 하나님께서는 안전과 필수적인 의식주를 신비롭게 제공하셨습니다. 결핍 속에서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두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최소한의 필수적인 만나와 메추라기도 은혜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풍요 속에서 자신의 은혜를 누리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이라는 풍성한 복을 주시려 했습니다. 그래서 때가 되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앞서 광야를 통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써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광야라는 고생스런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만족이 되실 뿐 아니라 가나안이라는 풍요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해결해주시고 채워주셔야 할 것이 있는 것입니다. 배고파도 하나님만 바라보면 살 수 있지만 배불러도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할 것을 알고 의지하는 성숙함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한 가지 훈련을 거쳤지만 전혀 다른 상황에서 성숙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나 여전히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이 얻는 것으로 하나님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기 전이나 얻은 후나 하나님은 계속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현재를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주실 좋은 것을 얻으려는 노력이 아니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신앙이라면 삶이 편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잊게 될 것입니다. 배부를 때 하나님을 버린다면 고생할 때 하나님을 의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탕자가 재산을 챙긴 후 아버지를 버린 것처럼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그런 자는 14절과 17절이 말하는 대로 교만하여져서, 자기 소유가 자기 힘으로 얻은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난 날 인내하면서 주님을 의지했던 것, 기도 많이 했던 것을 자신의 공로로 평가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의 풍요가 최종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 복 받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최종 목적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그 의미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에 답하실 때 사용하신 신명기 말씀(6:13, 6:16, 8:3) 중 하나가 본문 3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시하신 곳에서 예배함 (신 12:1-28) (0) | 2017.04.16 |
---|---|
멸망을 가져올 착각 (신 9-11장) (0) | 2017.04.09 |
두려움이 있는 사랑 (신 7장) (0) | 2017.03.26 |
선물의 목적 (신 6:1-25) (0) | 2017.03.19 |
복을 얻게 하는 십계명 (신 5:1-33) (0) | 2017.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