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9-11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얻게 될 때에 자신들이 강해서 승리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경고했습니다. 본문 9장 1-2절이 말하는 대로 이스라엘은 약했고, 오히려 가나안의 아낙 자손이 크고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할지라도 또 다른 교만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약한 것은 맞지만 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시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너희가 하나님께 착하기는커녕 줄곧 하나님을 반역했다고 지적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적나라하게 백성들의 실체를 지적합니다. 너희는 교만하고(4절), 고집 세며(6, 13, 27절), 반역적이고(7, 23-24절), 도발적이며(8, 18절), 타락하고(12절), 우상을 숭배하며(12, 16절), 범죄했고(16절), 악하며(18절), 믿지 않고(23절), 불순종하며(23절), 사악한(27절) 짓을 해왔다고 말합니다. 24절에서 모세는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모세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였기 때문에 지난날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들고 내려가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모세는 이스라엘을 살려달라고 40일 동안 하나님께 간구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 하고, 불성실했을지라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순간,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내려오는 순간 만큼은 진지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중요한 순간조차 하나님을 모욕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 이야기를 왜 했겠습니까?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그 자리, 그 순간이 그 때와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 다짐해야 할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려고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인지를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약하고, 보잘 것 없고, 목이 곧아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인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착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상들과의 약속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지키시려는 약속과 행하시려는 심판 속에서 이스라엘은 그저 혜택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자만할 이유가 없는 자신들의 상태를 기억하게 했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새 땅에서 주시는 복을 누리려면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고(10:12) 말했습니다. 할례라는 몸에 드러나는 흔적 때문에 자기가 선택 받은 백성이라고 자만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내면에 하나님의 자녀 다운 흔적이 있어야만 진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고집스럽게 하나님께 반항하는 목이 곧은 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택 받았다고 하면서도 심판을 자처하는 어리석음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마음 상태인지 목이 곧은 교만한 상태인지는 어떻게 드러납니까? 율법이 드러냅니다. 율법은 행위를 말하지만 사실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 주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심이 있는지를 드러내줍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똑똑해서, 성실해서, 착해서가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가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일상에 큰 문제가 없으면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여기지만 율법은 우리가 늘 함량미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미 구원을 얻었으나 계속해서 주의 법도를 읽고 되새기며 지키려고 하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태에 걸맞지 않는 과분한 은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앞에서 마땅한 태도, 은혜 앞에 겸손한 태도를 갖게 하고, 우리의 죄를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존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자존심을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본성적으로 거부하지만 성도는 율법에서 자신의 실체와 하나님의 진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만하게 되는 것과 자기의 착함이라는 공로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 위험을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신들이 착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자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가까이 할 때 자기에 대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자신의 착함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가 누리는 풍족함에 근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근거가 아닙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죄를 짓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기독교인이 될 때만 있어야 할 일이 아니라 계속 일어나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서 우리를 다그쳐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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