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2:29-13:1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덕적인 삶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종교들은 사람에게 도덕적인 삶을 요구하지 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와 언어를 통해 뜻을 주고받지만 우상 숭배자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부탁하기 위해 언어가 아닌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재현행위를 통해서 신에게 의사전달을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 예술행위가 고대인들의 제의적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연극 등이 사람들의 필요를 신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오늘날 리우 카니발이나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에 사용되는 음악과 색채들이 사용되는 장면들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종교들은 자기들의 신을 달래고, 감동시키고, 흥분시키고 때로는 신에게 협박을 하면서 소원을 들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예배는 쾌락을 추구합니다. 또 31절에 나오는대로 가나안 사람들은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면서 신의 마음을 움직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우상 숭배는 인간의 가치와 격을 떨어뜨리며, 비윤리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쾌락과 폭력을 저지르기 위해 그것이 신을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 하면서 결국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상 숭배를 과감하게 척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런 종교에 발을 들여 놓을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가나안의 종교와 그들의 예배를 더 좋은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이스라엘에 있었습니다.
첫 번째 가능성은 12장 30절의 “그들의 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개인들의 호기심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종교들 속에 있는 심오함, 화려함, 열정 같은 것들을 볼 때 거기에 뭔가 진짜가 있나보다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 주변의 다른 종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것들이 자기 예배당과 건물을 온갖 미술품과 형상과 향기 나는 것들과 소리들로 꾸미고, 자신들의 선행을 자랑하고, 큰 행사를 통해 세력을 자랑하는 것을 보십시오. 뭔가 대단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행위가 진실하고 사실일 것 같지만 거꾸로 그들이 믿는 내용이 가짜이고 허구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자랑하고, 치장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현혹될 두 번째 가능성은 13장 1절이 말하는 거짓 선지자나 꿈꾸는 자들의 유혹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종교에 빠진 자들이 환상을 보고 이상한 음성을 듣고 신기한 기적을 행하면서 유혹할지라도 듣지 말라고 말합니다. 물론 신앙은 신비한 것이고 초월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적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믿음을 구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단순히 신기한 일로 자기를 믿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적은 구원을 베푸실 때, 은혜를 베푸실 때에 사용하셨지 믿음을 갖게 하려고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적은 믿음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에 굴복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다루시고, 말씀하시는 과정에서 인격적으로 순복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이미 다 알고 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믿은 것입니다.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현혹될 세 번째 가능성은 13장 6절이 말하는 가족들의 유혹입니다. 6절을 보면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와서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라고 말할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들이 유혹할 위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가족 모두가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다면 그 중 누군가는 거짓에 유혹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가족들은 나를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신앙이 진실한지, 가식적인지는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나의 신앙이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가족 중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로만 신앙생활 해도 되는구나 하고 안심하고, 자기 정당화를 할 것이고,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유혹과 거짓에 쉽게 영향을 받아 그것을 가정 안으로 들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무너뜨릴 것입니다.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현혹될 네 번째 가능성은 권력과 세력에 의한 선동입니다. 13장 12절, 13절을 보면 모세는 힘 있는 자들이 한 성읍을 장악해서 우상들을 섬기게 만들게 될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타락한 종교일수록 권력에 의해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에 이용되기 쉽습니다. 그런 종교들은 인간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타락한 본성을 지적하기보다 이용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대중적인 것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돈과 현대 문명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 종교성은 때로 복음적인 교회마저도 기복적이고, 인간 본성에 맞게 변질시킵니다. 사람들은 큰 교회가 하는 것이면 괜찮은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어느새 대세가 되고 바른 신앙을 추구하려는 교회는 구석으로 몰리는 것입니다.
모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나안에 빠져들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대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반복되는 제사, 반복해서 외우고 실천하는 율법에서 생명과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면, 가나안 종교가 더 화려하고, 새롭고, 역동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과 예배와 교회의 활동들에 싫증을 느끼면 세상 우상들이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의 핵심은 죄와 십자가의 발견을 반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죄와 싸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주 반복하는 예배가 그것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죄를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다는 사실로 감사하기 때문에 그런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예배의 큰 주제이지 않습니까? 그 반복을 진부하게, 지루하게 여기는 생명이 없는 어리석은 목사들과 성도들은 마치 이스라엘이 가나안 종교에 발을 들여놓듯이 교회와 예배를 세속화시켜왔습니다.
여러분, 예배와 교회의 일상은 사실 겉으로 눈에 보기에는 단조로운 반복입니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 거듭난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생명과 기쁨이 끊임없이 샘솟습니다. 반복되는 예배 형식과 반복되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역사 하시는, 일하시는 분이 끝이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부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정말 단조롭게 반복되는 것은 인간의 죄입니다. 인간은 같은 죄를 반복해서 저지르는데 싫증을 내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타락한 본성이 그런 반복되는 중독에 갇혀 있음을 지루해 하지 않으면서 이상하게도 반복되는 신앙의 요소는 지루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가나안 같은 이 세상에 호기심을 품을 것이며, 거짓 이단과 이적으로 유혹하는 자들에게 현혹될 것이며, 가까운 자들의 꾐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는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야 합니다. 예배에 새롭게 등장하는 어떤 순서나 노래나 특별 순서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없었던 진실한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절실한 엎드림이 새로운 예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전보다 새롭게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지 자기의 마음을 세밀하게 살피는 일이 없으면, 아무리 새롭고 신선하고 최신의 감각적인 요소들로 예배를 치장해도 그것은 속고 속이는 일일 뿐입니다. 예배는 단조로워야 우리는 자기의 마음을 살피면서 예배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을 아시는,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마음이 되도록 자기를 살피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살피게 합니다. 너에게 죄가 있느냐 그러면 주님의 구원하시는 손길에만 의지하라.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만이 내가 살 길임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해서 항상 예배를 통해 은혜를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에서 율법을 다시 가르친 것입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순환을 끊는 은혜 (신 15:1-23) (0) | 2017.05.07 |
---|---|
정한 것과 부정한 것 (신 14장) (0) | 2017.04.30 |
지시하신 곳에서 예배함 (신 12:1-28) (0) | 2017.04.16 |
멸망을 가져올 착각 (신 9-11장) (0) | 2017.04.09 |
여호와, 우리의 선물 (신 8장) (0) | 2017.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