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악순환을 끊는 은혜 (신 15:1-23)

따뜻한 진리 2017. 5. 7. 23:29

신명기 15:1-2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에서 모세는 다른 생명들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18절까지는 사람들을 쉬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을 방치해서는 안 되고 필요한 것을 주기도 하고, 꾸어주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인 칠 년마다 빚진 자에게 빚을 면제해줘야 했습니다. 또 자기 집의 종이 된 사람은 육 년 동안만 일을 시킬 수 있었고, 칠 년 째에 놓아주어야 했습니다. 13-14절에 나오는 대로 종을 보낼 때는 충분한 양식을 함께 보내주어 그 사람의 새로운 출발이 안정될 수 있게 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로 19-23절은 가축 중 처음 난 것을 쉬게 할 것을 말합니다. 송아지 중 처음 난 것은 일을 시키지 말고, 첫 양은 털을 깍지 말아야 했습니다. 즉 처음 난 가축들을 가지고 이익을 보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동물들은 잘 돌봐주었다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가난은 사람이 근심과 노동 속에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쉬지 못하게 하는 큰 문제입니다. 가난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돈이나 물건을 빌린 채무자는 빌려준 채권자에게 묶이게 됩니다. 빌린 것을 빨리 갚으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가난이 심해지면 점점 헤어 나올 수 없이 악순환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런 관계를 끊고 새출발 할 수 있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모세는 면제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부작용이 일어날 것을 지적합니다. 빚을 없었던 것으로 면제해 주는 그 일곱 번째 해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빌려주기를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빌려준 것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누군가가 빌려달라고 할 때 냉대하지 말고 빌려주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가진 자들, 빌려줄 자들에게 그런 말을 했지만 없는 사람들, 빌릴 사람들도 이 명령을 악용할 수 있었습니다. 면제년이 가까워 올수록 가난한 자들은 더 빌리려고 하고, 부자들은 더 안 빌려주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들 각자가 자기 능력껏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살고, 피할 수 없는 사고나 사건들에 의해 경제적인 위기를 맞은 약자들을 서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율법이 의도하는 것과 반대로 가지 않습니까? 모세가 우려한대로 칠년 면제의 해를 악용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남의 돈을 일단 쓰고 면제받을 것을 기대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돈을 빌릴 수 있는 제도는 꼭 필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있는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대출 받을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광고가 부추깁니다. 또 큰 기업들일수록 부도가 나면 정부의 재정 투입을 기대하면서 방만한 경영을 하는 일도 많습니다. 은혜가 성실한 책임감을 반감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어떤 누구도 세상의 자원을 자기 것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모았다고 해서 자기 것이라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이상적인 인간이라면 아무리 복지가 좋아도 성실하게 일하고, 또 빚을 탕감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성실하게 빚을 갚는 일을 자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현실의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개인의 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하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게으름의 문제가 생기고 모두의 삶이 하향평준화 됩니다. 그래서 여러 국가들은 개인이 노력한 것에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전체의 복지를 위해 세금을 거두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여전합니다.

 

    그래서 국가들은 겉으로는 인간 서로와 사회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을 심어주려고 하지만 실상은 인간성에 대한 비관, 의심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성이 법으로,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래 사회는 모든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로 갈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소득과 지출 정보가 대부분 조회 되고, 무수히 많은 CCTV가 우리의 행동을 감시하는 세상인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스스로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성을 상실하는, 더욱 통제된 사회로 가게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서로를 감시하고, 복지수준을 높이더라도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본문의 명령을 하신 이유는 14-15절에 나온대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빚을 진 자들이었고, 종살이 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처지였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새출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현재의 복을 누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자기 여력을 가지고 약자들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채권자가 그런 은혜를 베풀 때 도움을 받는 채무자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라면 넉넉할 때 인색하지 않기 위해서 욕심과 싸워야 하고, 빈곤할 때 무책임하게 의존하는 뻔뻔함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모세가 우려한대로 이 세상에는 베풀어질 은혜를 기대하면서 이용하려는 자들이 여전할 것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원이 악인에게 낭비되지 않고 절실한 자에게 베풀어지도록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선행과 은혜가 바르게 사용되도록 노력해도 사람의 속을 다 알 수 없기에 최종적으로는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켜보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뻔뻔했고, 이기적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