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25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난 시간에는 22장과 23장에서 구별됨, 하나님께서 두신 경계를 지키는 것을 주제로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범위를 더 넓혀 22장부터 25장을 배려라는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
22장 6절을 보면 새 둥지를 발견했을 때 어미새와 함께 알과 새끼까지 모두 취하지 말고 어미새는 놓아주어 그 종을 보존하도록 했습니다. 10절을 보면 몸집과 힘이 다른 두 동물인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메어 밭일을 시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약한 짐승이 혹사당하기 때문입니다.
23장 15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을 만나면 다시 주인에게로 보내지 말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보호해야 했습니다. 19절은 가난한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돈을 꾸어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4절을 보면 굶주린 자들은 다른 사람의 포도원이나 곡식밭에서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작물을 챙겨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농장 주인은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곡식이나 포도가 익으면 적당히 남겨두고 수확을 하라고 말합니다(24:19-22).
24장 6절, 10절에서 13절, 17절에서는 돈을 빌려간 채권자가 채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재산 중 맷돌을 이루고 있는 두 짝의 돌을 담보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맷돌은 날마다 곡식을 갈아서 음식을 마련하기 위한 필수품인데 그것조차 없으면 그 가정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채권자는 일교차가 심한 그 땅에서 생명 유지의 필수품인 겉옷을 담보로 빼앗아 가서도 안 됩니다. 빼앗아가더라도 추운 저녁이 되기 전에 돌려줘야 했습니다. 또 채권자는 채무자의 집에 직접 들어가서 물건들을 압류를 해서는 안 되고,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가지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특별히 과부나 고아의 재산을 인정 없이 압류해서도 안 됩니다.
24장 14절에서 일꾼이 품삯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으므로 고용주는 줘야 할 임금을 미루지 말라고 합니다. 16절은 아버지의 죄 때문에 자식이 죽임 당하거나 자식의 죄 때문에 아버지가 죽임 당하는 연좌제 같은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25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범죄자가 받는 형벌은 죄에 비례해서 무거워지지만 매를 40대 이상 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4절에서는 일하는 소가 곡식을 먹지 못하도록 가죽으로 된 망을 입에 씌워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세세한 항목들을 말씀하셨을까요? 사람은 억지로라도 법을 지킬 수는 있습니다. 율법이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안 하고, 하라는 것은 자기만족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지적하셨던 대로 율법을 겉으로는 충실하게 지키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자기 이익과 안전을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냥 놔두면 굶주린 자는 자신의 본성대로 새알과 새끼와 어미새까지 잡아먹을 것이고, 남의 농장에서 서리하는 것을 합리화하면서 황폐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지키고 있다가 추수 때가 되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거둘 것입니다. 또 채권자들은 빌려준 돈을 악착같이 받기 위해 채무자들을 독촉하고 집안까지 들어와서 그들의 생필품까지도 빼앗아 갈 것입니다. 주인의 탐욕은 일꾼에게 임금을 주지 않은 채 착취하게 만들고, 가축도 혹사시킬 것입니다. 사람들은 범죄자에게 지나친 감정을 쏟아내어 가혹한 처벌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상대를 배려해야 할지 말씀하셨습니다. 약한 자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로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배려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 같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시지만 가차없이 심판하시고 원칙대로만 심판하시는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를 참아주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인애, 어진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심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존재들을 배려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을 보이시는 대로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선한 본보기를 자기가 경험해도, 혜택을 입어도 자기는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인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가르쳐주신 것은 우리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리고, 마음도 헤아릴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심하게 말씀하신 것들은 또 지켜야 하는 규칙으로 이해될 뿐입니다. 그래서 유태인들 중에는 빚진 자의 겉옷을 담보로 빼앗았다가 본문이 시키는 대로 저녁에는 돌려주고, 다음 날 다시 압수하는 일을 매일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에 나와 있는대로 나는 했다.’ 이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더 깊이 세심하게 말씀하셔도 하나님의 마음과 공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돌보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있는 것을 긍휼히 여기며,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 우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일 수 있습니다. 손해가 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먼저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시는 동안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돌보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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