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진노 아래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복음 (롬 1:18-32)

따뜻한 진리 2019. 3. 17. 21:42

로마서 1:18-3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자가 일평생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처음 예수 믿을 때 뿐 아니라 계속 필요합니다. 바울은 그 복음을 성도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본문 118절부터 320절까지 이방인과 유대인의 죄에 대해 말합니다. 복음을 알기 위해서는 죄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필요한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상태를 고발하기 위해 그 시작인 18절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음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옳다고 여깁니까? 혹시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무조건 화를 안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악에 대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악을 내버려두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해, 옳고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진노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는 사람이 창조 목적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거절하고 자신이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살아계신 분이시고, 영광을 받기 원하신다는 것을 피조세계를 통해 알리셨습니다. 우리를 압도하는 우주와 자연경관들, 그것의 조화, 우리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 그리고 몸의 신비로움을 경험할 때에 하나님이 분명 살아계시고,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피조세계가 우리에게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빈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굴복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풍성한 지식입니다. 그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예배하게 합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그런 지식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신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어느 누구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거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에 대해,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의무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에 순종하기보다 그것을 망가뜨리고, 어긋난 길로 가는 것에서 쾌감을 느낍니다. 자유를 느낍니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발산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진노를 내리십니다. 마지막 때에 있는 심판만이 진노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 진노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부패하고 왜곡된 인간의 마음을 내버려두시는 것이 심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번민과 질병과 사고와 재난과 허무와 분쟁 등은 단지 인간이 덜 진화되어서, 자원이 부족해서, 교육을 못 받아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날 좀 그냥 내버려두세요.’라고 말하는 인간의 불만스런 요구대로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는 것이 심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자신을 낮추면서 통제하지 않으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가장 좋은 길을 버리고 망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똑똑한 줄 알지만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인간은 어리석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신으로 섬기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자연에 있는 것이든, 돈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어떤 물질이든, 인생의 목표든, 취향이든, 취미든 그것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자기 인생을 허비하고, 또 그것 때문에 자기나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파멸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면 자기가 주인이 되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생각하지만 자기보다 열등한 것에 조종되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맛있다고 느끼고, 진정한 사랑이 아닌 자기 감각을 자극시키는 것, 자기애에 집착한 쾌락을 사랑으로 여기는 것이 일상화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우상숭배가 대표적으로 성적 타락으로 나타나는 것을 지적합니다. 성적 타락은 단지 육체적 쾌락을 숭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남자와 여자라는 구별, 그 성별대로 태어나게 하신 것에 순종하는 여부, 또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세우고 지키는 것에 순종하는 것, 부모의 역할에 순종하는 것, 그리고 간음의 문제를 비롯한 십계명의 조항들에 순종하는 일이 이 성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일탈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이자 권리라고 생각하는 일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들을 모두 허물고 인간이 모든 것들의 선악을 결정하겠다는 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 자신이 신이 되겠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바울 때 뿐 아니라 우리 시대까지 진행되고 있는 일입니다. 그 때에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바울은 단지 동성애자들만이 그런 죄를 짓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그런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신으로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32절에서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들도 그런 일에 동참하도록 만듭니다. 악한 일에 모두가 동참해서 자신들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노력이 동성애자들의 영역 확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화와 교육과 유행 등에 가득합니다. 그것은 남들도 하니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것인데, 이미 우리가 그런 죄들에 젖어 살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죄를 퍼뜨려 자신의 죄를 가리려 하지만 반대로 예수 믿는 우리는 거룩한 삶으로 세상이 죄를 알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뜻대로, 죄의 성향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할 때 자신의 가치도 고귀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이 옳고 선한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순종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그것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죄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길에 순종하는 것이 구원이고, 복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이 자유라고 착각하는 것들은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시간적, 공간적 자유가 있고, 자원과 능력이 허락되면 엄청난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죄짓는 일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추구하는 길은 인간성을 상실시킵니다. 파괴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이 가장 복됩니다. 사람은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순종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배는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높이는 일을 위해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을 훈련하게 합니다. 예배를 통해 자기를 복종시키는 자가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높이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백성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