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1-29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에서 바울은 행함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6절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라고 말한 것과 13절에서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라고 말한 것 때문에 우리는 바울이 행위구원론을 말한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1장에서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이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을 가르치고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그 죄를 짓는다고 지적하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판단하지 말고 자기나 똑바로 하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자신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에 분별력을 주려고 하고 있고, 그들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선악을 판단해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행함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 유대인들의 판단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믿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비판하기 전, 지난 주 본문인 1장 후반부에서 세상 모든 인간이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고, 또 기독교를 모르고 십계명을 들은 적이 없어도 자신이 지켜야할 공통된 도덕을 본성으로 인식하는데도 그것을 어기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우상에 사로잡혀 부패한 삶을 산다는 것을 고발했습니다. 바울은 그 내용을 통해 율법 없는 이방인들을 비판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그것을 지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했어도 양심, 죄책감이 남아 있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은 그 양심, 죄책감마저 지우려고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양심은 죄를 두려워하도록,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도록 만듭니다. 율법을 듣지 못한 자들도 심판하실 근거로 양심을 사용하시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몰랐고, 그게 죄인 줄 몰랐다.’고 핑계하는 자들이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본성, 양심을 근거로 그들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죄에서부터 행함에 이르기까지 사는 동안 품고, 드러내고, 쌓은 것들을 기준으로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여겼는지,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내용들에 순종했는지를 마음에 있는 것들이 드러난 행위를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런 하나님의 심판에 불만을 제기할 수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에 대해 정당하다고, 옳다고, 그것이 선하신 것이라고 속히 인정해야 합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들이 그런 심판을 받는다면 율법을 받아 분명하게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율법을 근거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착각했습니다. 율법을 받았으면 잘 지키든지, 못 지키면 하나님 앞에서 슬퍼하고 회개하든지 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있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착각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확고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아브라함에 혈통으로 태어난 것,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배우고 어느 정도는 그 율법대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 몸에 할례를 한 것들이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를 보장해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심판을 면하게 해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역사상 조상들이 율법을 계속 어겨왔어도 하나님이 계속 구원을 베푸시고, 또 메시아와 회복을 약속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유대인 자신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혈통, 율법, 할례가 그것을 보증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이 너희 유대인들이 구원 받는 근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악함에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인도하시고 사랑을 베푸신 이유는 그들이 회개하게 하려는 것이지 구원을 보장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 법 앞에서 무력한 죄인임을 실토하고 회개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이 보호막인 것처럼 착각하고 자랑했습니다. 바울이 지적한대로 율법을 가르치고, 이방인들을 정죄하면서 자기들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고 잘난 척을 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의도대로 회개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려 하고, 자기들의 죄를 지지해주는 신을 만드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할례와 종교를 가지고 우상을 삼아 자신들을 높이고 자랑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주신 더 좋은 것을 가지고 더 악한 일을 했습니다. 먼저는 유대인이고 그리고 헬라인이라고 바울이 말한대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특별한 지위를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그렇게 사용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혈통 안에서 예수님을 보내시려고, 또 하나님 나라와 구원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시고 이해시키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복음의 필요성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 그들의 실패 속에서 복음이 필요한 인간 현실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회개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회개하기보다 이방과의 비교 속에서 더욱 교만했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들을 우습게 여기고 자신들은 율법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죄를 계속 즐기면서 죄책감도 덜기 위해 상대방을 정죄하는 일을 합니다. 남의 죄를 들추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나는 괜찮고,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고 버티는 것, 시간을 더 끌면서 자기 맘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더 잘 배우고, 복음을 더 선명하게 배우고, 교리를 배우고, 분별력을 키우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월해지기 위해서입니까? 특권의식을 갖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참된 회개를 하기 위함입니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죄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기 위함입니다. 자기를 위해 선한 일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 자기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든지, 훌륭한 일을 하든지, 또 때론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사용되기 위해 신앙의 길. 믿음의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심오한 것을 알아도, 깊은 은혜를 경험해도, 도덕적이게 되어도, 율법을 점점 완전하게 순종하게 되어도 결국 자기만족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사는 죄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지점에 이르든지, 어떤 은혜를 경험하든지, 무엇을 성취하든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찬양하고, 겸손해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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