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언약으로 보는 성경(4)- 하나님의 형상 아담

따뜻한 진리 2021. 2. 14. 18:11

 

 

창세기 1:26-2:25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들을 모두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과 하나님 나라를 만드셨고, 눈에 보이는 우주의 모든 것과 우리가 사는 지구를 만드셨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에 나타내신 자신의 영광을 지구의 한 장소에 집중해서 보이셨는데 그곳이 에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번 더 자신의 영광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생명체를 만드셨는데 그것이 바로 아담입니다.

 

    최근 신학자들 가운데 아담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추세가 두드러집니다. 그들은 아담이 지구상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격적인 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인류 전체의 죄성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을 의인화해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실제로 존재했었던, 살아있었던 한 사람입니다. 창세기에서 세상을 만드시고,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의 등장이 허상이 아니듯 아담도 실재했던 사람입니다. 성경은 소설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언약적 관점으로 성경을 보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눈에 보이게 상징, 모사, 비유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신화로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지어낸 신화나 소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언약으로 보는 일은 그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이 실제였다는 역사성에 기초합니다. 창조의 의미든, 에덴의 의미든, 출애굽과 성전의 의미든 이 하늘과 땅에 있는 분명히 존재하는 자연 만물들과 사람들과 물건들,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의미부여 하셨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의 내용들이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종교적 효과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영화나 소설이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감동과 중요한 변화의 계기를 주는 것처럼 성경을 그런 식으로 잘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성경을 통해 종교적 체험과 교훈을 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일어날 미래의 일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분명 전인격적으로 살아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온 것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을 말한대로 두 아담의 역사성은 인간의 죄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대한 성경의 답을 믿을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우리는 에덴의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실제 존재했던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류가 처하게 된 이 현실의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게 된 것인지를 말해주는 실제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실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을 통해서 자기 영광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 우주의 어떤 것보다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7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삼위 하나님인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겉모습이 우리처럼 생기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신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을 본받아서 따라하도록 의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이 창조라는 행위로 나타난 것처럼, 창세기가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는 것처럼 사람의 존재와 형상은 행동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유사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형상의 닮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담에게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주와 생명을 탄생시키셨듯이 아담도 하와와 함께 하나님의 생명창조와 유사한 일을 출산을 통해 따라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은 없었던 존재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통해 생명이 생겨난 것을 경험하면서 그런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놀라워하고, 그런 하나님을 따라하게 하신 자신의 영광스러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산은 타락한 결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단지 타락으로 인해 출산의 고통을 뿐입니다.

 

    다음으로 2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물들을 이끌어 오셔서 아담이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그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담이 이름 짓는 일은 말을 하는 것이었고, 또 그 동물들의 특성을 자신이 파악하고 규정해서 관계를 맺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창조한 것들의 기능을 규정하신 것을 모방한 것입니다. 1장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16절은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것을 말하는데 즉 창조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만물들을 말씀으로 불러내시고, 그것들의 기능과 역할을 정해주시고 그 피조물들이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관계를 맺으신 것입니다. 이런 이름 짓기의 의미가 어디서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아브라함)이나 야곱(이스라엘)의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사람을 새롭게 규정하시는 것에서입니다(이삭, 예수의 이름을 부모에게 지정하심). 이렇게 하나님처럼 아담도 자기를 중심으로 동물들의 개별적인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이름 짓기를 하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모방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일을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담은 공동체성을 갖습니다. 사람은 홀로 지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앞에서 설명한 이름 짓기 과정 중에 아담이 자신에게 짝이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아담이 혼자임을 알게 하신 후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 하와를 창조하셨는데, 아담도 그것을 알았기에 하와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와와 한 몸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계시면서 공동체적으로 존재하시는 것을 닮은 것이고, 아담이 하와에 대한 희생과 사랑의 책임을 갖게 되는 결혼이라는 관계 속으로 들어간 것은 하나님이 피조세계, 특별히 사람과 언약관계를 맺으신 것을 닮은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은 자신의 존재와 행위만 하나님을 닮은 것이 아니라 그런 수고로운 일의 마침 역시 하나님을 닮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섯 날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아담은 하나님의 안식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신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담은 자신이 거하는 시공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채워지는 때를 바라면서 순종해야 했습니다. 에덴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나라의 공간적 모형이었던 것처럼, 안식일은 시간적 모형으로써 그 엿새 창조의 마지막에 안식일이 있는 이 칠일 패턴은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게 하고 사람의 수고로움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마치고 언젠가는 쉬는, 종말론적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반복의 7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일 주일 단위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식에 들어올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에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첫째 아담이 죄 때문에 순종으로 이 안식에 들어가는 일에 실패했지만 둘째 아담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안식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라며 하나님을 닮은 자로서 일하셨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고 말씀하셔서 안식을 바라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설계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찬란하게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뿐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본 받아 유사하게 따라하는 것, 닮는 것으로 영광을 드러내길 바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누군가를 닮는 것은 존경의 의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존경해서 나를 본 받고자 따라하면서 롤모델로 삼는다면 큰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영광을 우리를 통해 받으시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길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바르게 드러내지 못하는 오염되고 일그러진 형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상 사람들의 행동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서 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낳고, 아름다움과 질서를 추구하고, 자신은 불의해도 정의를 부르짖고, 명예를 추구합니다. 물론 그런 죄로 오염된 닮음의 행위들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자기도 모르게 시인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닮은 것을 부인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모두가 여전히 하나님을 닮은 형상입니다. 우리는 그런 수준의 형상으로 만족할 수 없고 아담에게 의도하셨던 영광스런 형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