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5-1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의 성전 에덴에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 아담은 에덴을 잘 다스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퍼뜨리는 일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아담의 존재와 행동이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을 닮았지만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과 똑같아지거나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닮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지, 자기가 하나님인줄 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겨서는 안 되고, 자신의 원본이신 자기를 있게 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잘 해서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과 인정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는 그런 아담의 본분을 잊지 않고 실행하도록 기억시키는 언약의 증거물이었습니다.
아담은 금지된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된다고 하나님께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이었지만 그 형상이 변하지 않는 불변의 상태가 아니라 더 나은 상태나 더 안 좋은 상태가 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고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안식의 상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생명나무가 아담에게 기억시키고, 보증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만약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형상이기는 하지만 영광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비참하게 보낼 죽음의 상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 하냐에 따라 결과를 맞게 되는 상태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다른 피조물들에게는 일방적으로 ‘oo가 되라, oo을 하라’는 명령을 하셔서 순종만 할 수 있는 관계 속에 두셨지만, 아담은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 관계 속에 두셨습니다. 즉 일방적이지 않은 쌍방적이 언약 관계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순종을 통해 더 나은 생명으로 갈수도 있고, 불순종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하나님과 유사한 도덕적 책임이 있는 자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라는 자신의 일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실행하시고, ‘좋다’라는 판단, 심의의 과정을 스스로 통과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닮은 아담도 행위에 따라 하나님의 심의, 심판을 받고 그에 따른 결과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선악과를 두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이것을 행위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자기 행위로 인정 받고, 상을 받고 만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만족하신 하나님을 따라, 사람도 자기가 행한 대로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과학에 원인과 결과라는 법칙이 있듯 자신이 행한 대로 결과를 얻는 것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성에 맞는 도덕적 법칙이고 창조된 우주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타락한 이후에도 그 원리 위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냉혹하게 세상을 내버려두시지 않고 많은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하다해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도덕성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인격과 정상적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고 자신이 갖춘 자격과 노력에 따라 결과를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의 영광을 닮게 하시려고 아담이 맡은 일을 잘 이뤄내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과제를 주신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에게 얼마든지 용돈을 그냥 줄 수 있지만, 청소나 설거지 등 할 일을 만들어서 그것을 완수하면 용돈을 주듯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자격과 공로를 인정받아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럴 때 아담의 그 떳떳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그 행위, 성취는 선악과라는 법 아래에서 순종으로 이뤄져야 했습니다. 행한대로 보응 받는다는 이 행위의 원리가 창조세계에 기초로 주어졌고, 그 다음으로 은혜의 원리가 주어졌습니다. 마치 율법이 먼저 주어지고, 복음이 주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는 처음 행위언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행위언약을 거부하는 주장들이 항상 있어왔습니다. 개혁주의 안에서도 행위언약을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 누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인간 아담한테 행위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을 요구하셨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직 은혜언약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아담이 오로지 은혜 아래 있었다면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신의 책임 때문에 심판을 받아 고통과 죽음에 처하게 되었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계명, 율법이 선한 것이듯, 아담은 분명 거룩하고 선한 행위 언약 아래 있었습니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죄가 악한 것이듯 행위언약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행위 언약을 범한 인간의 약함과 교만이 한탄스러울 뿐인 것입니다. 행위언약을 인정하는 것은 아담에게 지킬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시고, 심판하시는 심술궂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과도한 임무를 아담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와 행위에 만족하셨듯이 아담도 칭찬을 받아 자신의 존재와 행위에 뿌듯하게 만족하면서 ‘나의 원형인 하나님도 이런 분이시구나’ 깨닫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행위언약은 하나님을 닮은 아담이 하나님을 닮은 성취를 얻어야 할 자연스런 과제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드러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맺으신 행위언약을 성경이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담을 예수 그리스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담의 행위에 따라 많은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었듯 둘째 아담 예수님의 행위에 따라 죄인들이 구원을 얻습니다. 이 두 아담은 마치 한 나라의 왕과 같습니다. 두 아담 모두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대표성을 갖고,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만약 첫째 아담이 자신의 공로가 아닌 은혜에 의해 기초한 심판을 받은 것이라면 둘째 아담의 사역 역시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만 기초한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의롭게 하실 수 있는 자격이나 적극적인 공로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라는 순종을 예수님의 공로로 여기심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십자가 사역으로 얻으신 권리, 공로, 지불하신 대가인 핏값으로 우리를 사셔서 자기 소유가 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아담이 행위언약 아래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을 행위구원, 공로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그냥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근거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아담이 실패한 것을 예수님이 성취하신 것에서 오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5장 18,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많은 사람들을 죄인 되게 했던 아담의 공로에 대한 책임이 컸던 것처럼 예수님의 공로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놀라운 공로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 때 우리는 자신에게 구원 얻을 자격과 공로가 없음을 더 잘 알게 되고, 예수님의 공로가 든든한 구원의 기초라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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