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8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함께 예수님의 열 두 제자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쓴 복음서입니다. 누가는 마가와 함께 바울의 동역자였고, 의사였고,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드러나고, 교회를 통해 성취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의사답게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내용들을 신학적인 주제에 따라 나열하는 동시에 성령의 역사를 강조합니다.
누가는 그 시작에서 두 아기의 출생을 다루는데 바로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먼저 세례요한의 출생과정을 꽤 자세히 다룹니다. 5절을 보면 누가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제사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론의 후손이라고 밝힘으로써 둘 다 제사장 가문임을 말합니다. 또 6절에서는 두 사람 다 경건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의 분향단에서 향을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깜짝 놀란 사가랴에게 아내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천사는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정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그 말을 믿지 못했고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아내 엘리사벳이 정말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요한의 아버지에게 나타났었다면 이번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는 당시 약혼은 했지만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천사는 성령이 마리아를 덮어 아이를 갖게 하실 것이라고, 나이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친척 엘리사벳도 임신한지 벌써 여섯 달이 되었으니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천사는 요한의 이름을 미리 정해준 것처럼 마리아의 아기 이름도 예수라고 정해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말한 친척 엘리사벳의 집에 신속하게 찾아갔고, 엘리사벳은 자기 뱃속의 아기가 마리아가 누구인지 알고 움직이는 듯 한 태동을 느꼈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아이와 마리아의 아이가 어떤 관계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41-42절).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는데(46-55절),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불렀던 노래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마리아는 교만하고 높은 자들을 낮추시고, 겸손한 자들을 높이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마리아는 약 석 달 동안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돌아갔고, 드디어 엘리사벳이 먼저 세례요한을 낳습니다. 아이가 팔일 째 할례를 받던 날 친척들이 모여 아이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할 것인지 물었을 때 아기의 엄마 엘리사벳이 요한이라고 대답하자 그 이름은 가족들이 사용하지 않는 이름이기 때문에 말 못하는 남편 사가랴에게도 물었지만 그 역시 요한이라고 글로 써서 보여주었습니다. 노년에 아이를 가진 이상한 일과 갑자기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남편과 아내가 아이의 이름을 특이하게 짓는 일에 일치를 보여주자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사가랴는 그 때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을 예언하는 노래를 했습니다(67-79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그 아들이 드디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이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개입과 능력으로 올 것임을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통해 보여주셨었고, 다윗과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들을 보내실 때는 성경에 등장한 어떤 불임의 여인들보다 더 극적인 상태를 사용하셨습니다. 즉 너무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이 아이를 임신하게 하셔서 그 아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분명히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결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 기적과 처녀가 아이를 낳는 기적을 겹으로 감싸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구약에는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고가 창세기부터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뿐 아니라 세례요한에 대한 예고도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3절의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와 말라기 4:5-6절의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는 세례요한에 대한 예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게 하시려고 세례요한도 함께 예고하시고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의 역사를 드러내신 것은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가 보통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두 인물을 통해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실 것인지가 드러납니다. 곧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심판과 구원이 곧 일어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두 인물을 맡아서 낳게 된 당사자인 부모들에게는 이 사건들이 충격이었고 그 때까지의 자신들이 살아온 일상이 모두 날아가는 두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젊은 부부가 출산을 계획하고 준비한 상태에서 기다렸던 임신 소식을 들어도 여러 가지 급격한 변화들이 시작되는데, 세례요한과 예수의 부모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상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인간적으로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믿을 수 없었고, 믿지도 못해서 벌을 받아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학자들은 당시 유대인의 약혼 풍습상 마리아의 나이가 십대 초중반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그런 마리아가 믿음으로 반응한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기꺼이 쓰임 받고자 순종하는 믿음을 보인 것은 우리에게 훌륭한 본이 됩니다. 천주교가 마리아를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치게 마리아를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있는데, 마리아는 믿음의 대상은 아니지만 훌륭한 믿음의 본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도 자기 약혼녀 마리아에게 생긴 일 때문에 두려워했지만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 역할을 감당했고,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지만 결국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일, 예수님이 이 땅의 사람들의 눈에 보이도록 드디어 나타나신 이 초림사건이 두 가정에게 그렇게 당황스럽고 충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예상하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은 인간들에게 충격이고 공포입니다. 세례요한의 가정과 예수님의 가정은 모두 경건했고 부부 중 아내들은 놀라운 믿음을 보여줬지만 그래도 그들은 분명 얼떨떨하고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예수님이 처음 오신 초림 때 뿐 아니라 다시 오시는 재림 때에도 일어날 일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어린 아기로 오시지 않고 심판자로 오실 것이고 그 때에는 몇몇 사람이 아니라 온 세상이 놀랄 것입니다. 그분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도 놀라게 될 것입니다. 황당한 임신과 출산으로 이전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었던 세례요한과 예수의 부모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될 모든 인간들은 그때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끝내고 새로운 운명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마리아와 스가랴의 노래는 주님이 오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그 감격스런 구원과 두려운 심판을 함께 말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교만한 자들의 심판과 죄사함으로 구원받는 두 가지 다른 길을(77절) 예언적으로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출생 앞에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놀라면서 분명한 반응을 하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항상 알고, 배우고, 가까이 하길 원합니까?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지옥을 피하고, 영생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여기고는 예수님에게는 무관심할 것입니다. 또 복음서를 다룰 때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진부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질 것입니다. 그는 분명 자신과 이 세상을 더 사랑할 것입니다. 누가는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이 이 죄인들의 세상에 오래전부터 예고된 바로 그 엄청난 일, 세상이 놀랄 일이 일어난 것임을 말합니다. 그는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를 계속 살피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풍성히 발견하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길 바랍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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