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57-10:2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전도하라고 보내신 것에 이어 이번에는 70명을 따로 세워서 보내셨습니다. 그들을 세우는 과정에서 어떤 이는 아버지의 장례를 이유로, 어떤 이는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망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들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훨씬 중요하고 긴급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실 때처럼 70명에게도 귀신 쫓는 능력을 주셨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전도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가지 않고 복음 전한 마을 사람들이 대접해주는 것에 의지하게 하셨고, 거절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거절할 동네들을 미리 예고하셨는데, 13절을 보면 고라신, 벳세다 그리고 15절의 가버나움을 언급하시면서 그 동네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거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동네들은 바로 유대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모여 사는 동네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동네 사람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어야 할 자들이지만 오히려 이방인들보다 예수님을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혈통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구원에 대해, 구원자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오랜 기간 기다렸던 그분이 마침내 오셨는데도 거절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심판 때 가장 비참하고, 아브라함 때 멸망한 소돔보다 더 고통이 심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전도여행을 떠났던 70명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처럼 귀신을 쫓아낸 것으로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예수님 같은 능력발휘로 기뻐했지만 21절을 보면 예수님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예고하신대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에 대해 가장 많이 배웠고,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알아보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잘 이해하고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자들이 그것을 거절하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더 잘 받아들이고 믿는 일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옳으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나 칠십인이나 신비한 능력발휘에 흥분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전하는 자나 듣고 믿는 자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자기 능력이 아닌 성령에 의해 아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를 알아보고 믿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사람에게는 복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는 것은 사람의 지식,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하셔서 예수님 앞으로 보내신 자들, 또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신 자들, 또 예수님을 필요로 하도록 성령께서 사람에게 죄인인 자신을 보게 하시고, 대속자이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떤 자랑도 하지 못하고 겸손케 하고, 구원이 선물인 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 방법이 옳은 것이라고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단순히 전도하는 방법, 선교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내용이 아닙니다. 물론 여기에 전도의 기초적인 태도들과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은 가족과 자신의 일을 모두 버려야 하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물론 우리가 복음을 위해 일하고 헌신할 때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떠나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고의 우선순위는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복음전도는 긴급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자가 되려면 가족을 무시하고, 생업을 다 포기하고, 쉬지도 말고 전도만 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피곤하시면 무리들에서 떨어져 제자들과 쉬기도 하셨고, 가족들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할 만큼 부모를 인정하고, 배려하셨습니다. 또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본문에서 말씀하신대로 자기가 복음을 전한 동네, 자신이 가르친 성도들에게 생계를 전적으로 의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4절을 바울은 보면 성도들에게 자신의 생계를 의지할 수 있는 권리를 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 열두 제자와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귀신 쫓는 권세가 모든 전도와 선교에서 항상 사용되는 방법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칠십 인의 제자를 보내신 과정에서 주신 귀신 쫓는 능력을 주시고, 제자도와 우선순위들을 좀 극단적으로 요구하신 이유는 그때 그들을 보내신 일이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해서 긴급한 사역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 사람들의 활동이 확장되게 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해 예수님 자신의 죽음을 의도하시려는 측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긴급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나 칠십 인을 보내실 때 특별한 조건들을 요구하신 것은 보내는 자와 보냄을 받는 자의 관계에 대해 경험시키시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들은 보내는 자와 동일시됩니다. 보냄을 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위해 동네를 선택할 권한이 없습니다. 보냄 받은 제자들은 좋은 의미에서 마치 예수님의 아바타처럼 순종하고, 나의 행동으로 인해 보내신 예수님이 평가될 것을 생각하면서 주의하고, 또 보내신 분이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인도하실 것을 신뢰하면서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냄 받은 제자가 어떤 일을 겪는다면 그것은 보내신 예수님이 겪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보낸 제자를 배척하면 단지 제자가 당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예수님이 거절당하는 것입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내는 자의 하나됨을 경험시키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이 하나이심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 역시 보내심을 받은 자이고, 보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 자신이 이 악한 세상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먼저 보냄 받으셨듯 자기 사람들을 세상에 보내신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또 22절을 보면 보내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보냄 받은 분이 예수님이신데 그 관계를 사람들이 알지 못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봄으로써 하나님을 뵙는 은혜, 영광을 누린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정리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보냄을 받아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낸 것처럼, 예수님은 그들보다 먼저 이 땅에 하나님 아버지의 보냄을 받으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온전하게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을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자인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께 보냄을 받으셨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을 충분하게 드러내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아버지를 드러내실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보낸 자와 보냄 받은 자가 하나 되고, 닮도록 성령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이 서로 완전히 닮도록 일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닮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일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아보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게 하시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경험하게 하시려고, 깨닫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 이어 칠십 인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셨고, 그런식으로 계속 보냄 받은 자가 또 누군가를 보내어 마침내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 단계의 보냄을 통해 우리에게 복음이 전달되었지만 그 모든 보냄 받은 자를 보낸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라고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것은 특권입니다. 어떤 나라의 대사보다. 어떤 높은 자의 대변인, 보좌관보다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은 우리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우리 인생이 주님이 보내신 자들답게 세상에 주님을 알리는 역할을 잘 감당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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