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가복음 강해 (17) 누가복음 10:25-42

따뜻한 진리 2021. 11. 21. 21:03

누가복음 10:25-4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율법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행하심에 의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은 사람이 죄를 깨닫고 그 구원자를 바라고 믿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에 실패할수록 더 열심히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 율법교사 역시 한계 속에서 무엇을 더 행해야 하는지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에게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물으시자 그는 율법의 핵심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잘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셨지만 그와 동시에 “네가 말한대로 행해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면서 마치 사람의 자기 행위에 구원의 길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음과 대답을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고, 사람이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율법이 요구하는 수준 앞에 죄인인 인간은 절망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구속자를 믿고 의지해야한다. 그 구원자는 바로 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설명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본문 25절이 말하는대로 그 율법교사는 예수님을 시험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무엇을 더 행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한대로 예수님은 그 인간의 행위, 노력의 굴레 속에서 답변을 하셨습니다.

 

    율법에 대해 깨달은대로 행하라는 예수님의 대답 앞에서 율법교사는 ‘사람이 어떻게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살 수 있습니까!’하고 절망하기보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29절을 보면 그가 그런 질문을 한 이유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잘 보이려고, 칭찬 받으려고 그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이웃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나름 정직하고 선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자들이 네 이웃이다.’라고 대답하시면 그런 이웃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잘 해왔는지를 자랑하듯 늘어놓으면서 칭찬받으려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비유로 답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채로 쓰러져 있었는데, 제사장도 모른 체했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 죽어가는 사람을 자기 짐승에 태워서 돌봐줄 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필요한 돈도 지불하고, 다음에 들러서 추가되는 비용도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진심으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희생적으로 돌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마치시고 예수님은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냐고 율법교사에게 물으셨습니다. 당연히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인 율법교사는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하지 말아야 할 원수 같은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사마리아인처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유 속에서 사마리아인이 원수 같은 유대인을 돌봐주었고, 율법교사가 비유 속 그런 사마리아인을 본 받아 동일하게 원수 같고 역겨운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여기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자기 동족 유대인들에게 알려지면 칭찬받기 보다는 이상한 놈으로 취급받을 일이었습니다. 죽도록 내버려 둬야 할 놈을 지극정성 보살펴줬으니 동족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일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마을에 도착하셔서 마르다의 집에 초대받으신 일이 소개됩니다. 예수님이 집에 오셨을 때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초대한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할 준비를 했던 것인지 매우 바빴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가서 자기가 혼자 하기에는 너무 힘드니 동생 마리아가 와서 도와주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걱정하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동생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했으니 이 일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앞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로 자신들에게 생긴 특별한 능력과 예수님과 함께 할 앞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쭐해지고, 경솔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 밖에 있었던 두 사람이 예수님 앞에서 인정받고 싶은 태도를 드러낸 것을 말합니다.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었고, 마르다는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좀 알아주시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조건 없는 사랑과 섬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거듭난 자, 영생을 얻은 자가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선행을 베풀고, 도덕적이고, 법을 지킵니다.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자기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합니다. 나름 자기가 수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질의 소유보다 자신의 도덕성에서 자존감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인정받고자 하는 동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칭찬해주지 않으면, 자기를 몰라주면 섬기던 일을 그만둡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런 선행의 동기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구원 받고, 영생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으려고 무엇인가를 더 행하려는 율법교사의 문제를 건드리셨습니다. 진정 구원받은 자는 자기가 살아온 사회에서 칭찬받는 일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옳은 일을 두려움 없이 행하고, 어떤 칭찬이나 보상이 없어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자가 이 세상에서 인정받을만한 자기 공로와 업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근거로 자기를 거저 구원해 주시는 은혜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요구하신 것도 동일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인 사람들이 마르다의 바쁜 수고를 몰라주고. 동생은 한가하게 앉아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도 이미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크다면 나 혼자 고생하는 것 같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어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만족이 없고 은혜를 망각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인정해주는 것들에서 자존감을 찾으려 합니다. 자기만족을 느끼려 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인지, 헌신적인 사람인지,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 알아줬으면 하는 기대 속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여겨주시는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비참한 죄인을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그 인정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런 인정받음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 밖의 다른 인정을 못 받는다고 괴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인정받는 것에 목말라 있는 근본 원인은 바로 자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거절하면서 세상에서 그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이웃이 될 수 없는 사람들과 이웃이 되라고 도전만 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몸소 원수와 같은 우리, 사탄이 고소하고 조롱했던 욥과 같은 우리와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아무도 몰라주는 섬김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마르다가 묵묵하게 섬기기를 바라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아무도 몰라주었던 무거운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게 하시니, 의롭게 여김을 받게 하시니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몰라주고, 인정해주지 않을지라도 묵묵히 사랑하고, 섬기고, 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