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가복음 강해 (22) 누가복음 12:35-59

따뜻한 진리 2021. 12. 26. 22:58

누가복음 12:35-59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자기를 따르는 과정에서 겪게 될 세상 근심과 핍박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한 하나님은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유혹과 근심이 밀려오는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할 날은 단지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준비가 안 되어 있었지만 예수님은 곧 죽게 되고, 부활하셨다가 떠나시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님을 따르고,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런 삶이 지속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에 참석한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식 잔치를 1주일 정도 했기 때문에 거기에 참여한 손님은 언제 집에 돌아올지 알 수 없었습니다. 종들은 주인이 집에 밤에 올지 새벽에 올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 갑작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39절에서 도둑이 언제 올지 알리지 않고 갑자기 오기 때문에 항상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종들이 그렇게 주인을 생각하고 기다리는 모습을 주인이 보면 종들은 복될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런 착한 종들을 주인이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들 중에서도 어떤 자는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주인이 없는 동안 다른 종들을 돌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종이 ‘주인이 멀리 떠났으니 돌아오려면 한참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종들을 괴롭히고, 주인의 재산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있으면 갑자기 돌아온 주인에게 무서운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종이 맡은 일대로 다른 종들에게 양식을 잘 나눠주고 돌봤으면 주인이 돌아와서 그 믿음직한 종에게 모든 재산을 맡길 것입니다.

 

    종이 그렇게 자기 일을 책임감 있게 잘 감당하기 위해 긴장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계속 강조하시기 위해 49절에서 자신이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불이 어떤 의미인지 몇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불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을 묘사하는데, 불이 그렇듯 그것은 위협과 긴장감을 주어 사람들을 가만있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람들은 앞의 비유의 악한 종처럼 자기 욕심과 착각에 빠져 헛된 짓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고, 착한 종처럼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긴장하여 항상 깨어있고, 중대한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깨어있는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십자가에 달리실 순간 때문에 예수님은 괴로움이 크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권면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50절에서 자신이 받을 세례가 남아 있다는 것은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런 힘든 마음이 어떠하겠느냐!’라고 물으셨지만 그 당시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평화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다툼과 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복음은 이 세상에 복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어떤 이들은 복음을 환영하지만 어떤 이들은 복음을 적대시하는데 그 속에서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곤란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소망을 품고 인내할 수 있는 것, 주인이 맡긴 사명을 계속 붙잡을 수 있는 것,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것은 그 주인인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 다시 오실 주님은 이미 사람들 앞에 서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 앞에 계신 그분이 바로 비유 속 그 주인 같은 분이심을 알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분임을 알아야 다시 오실 것도 알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구약성경이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이라고, 때가 차면 그분이 오실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성경을 잘 안다는 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눈에 보이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복 받은 때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들이 바람과 구름을 관찰하면서 날씨는 잘 예측하는데 지금의 이때가 어떤 때인지 내가 누구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태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재림이 두려운 심판의 때가 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고소한 자와 신속히 화해하지 않으면 재판장 앞에서는 기회를 잃고 감옥에 던져질 것처럼 자신이 다시 오실 심판의 때가 그러하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주인으로 재판관으로 다시 오실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고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은 그 때까지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혀 모르신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다시 오셔서 이 세상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 모든 인간이 행한 모든 일들을 자신이 다 알고 계셨음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안 계신다고 말하며 자기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살았던 모든 것들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종교지도자들처럼 사람들의 시선에 매여서 외식하지 않고, 아무도 몰라주어도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을 고백하는 삶을 살게 해 줍니다. 결국 주님이 다시 오셔서 억울함을 해결해주시고, 잘한 일들은 칭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이 예고, 경고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어떤 자들은 믿는다고 해도, 깨어서 순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생각보다 일찍, 당장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유 속 착하고 성실한 종처럼 주인이 기뻐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보다, 자기가 불신앙적 삶을 살아도, 주인이신 예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예수를 인정하고, 믿고 따를 때 생기는 손해와 경계와 핍박이 더 피부에 와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의 내용처럼 ‘주인이 더디 오리라, 아직 내 맘대로 살 시간과 기회가 있다. 나중에 좀 만회하면 될 것이다.’라는 태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지만 불순종해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뜻에는 무관심한 채로 계속 자기를 주장하는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마지막에 이 땅에 오신 후에야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또 지금도 우리의 삶을 가까이서 모두 지켜보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2천 년 전 베들레헴에 태어나기 전부터 이 땅의 사람들을 알고 계셨고, 다시 오실 때가 되기 전인 지금도 우리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본문의 내용들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의도는 우리가 예수님 오시는 그때 가서 정신 바짝 차려서 예수님을 잘 맞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심판을 피하고 칭찬받기 위해서 눈치를 보고, 눈에 띄고 평가받는 순간에 잘하려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인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태도로, 한없는 감사함과 그분의 종이 된 것이 영광스러움 때문에 맡기신 일들에 항상 충성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갑작스럽게 오신다는 사실은 마치 회사 사장이나 공무원이 공장에 갑자기 나타나 시설 점검, 위생점검을 할까봐 직원을 긴장시키는 것과 같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과 유사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간절히 고대하는 태도로 주님을 기다릴 때 제자 된 우리는 세상 근심과 유혹을 이겨내면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