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1-3 (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기 위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장래의 소망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알기 위해, 그런 것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자들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과 그것을 지원하는 진화론이 성경이 말하는 죄에 대해 부인하고 회피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살펴봤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악한 권세에 휘둘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 악한 지배자는 사탄 즉 공중 권세 잡은 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와 세상 사람들 개개인의 허물과 죄만 말하지 않고,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죄의 세력을 이루어 하나님을 반대하는 파도와 같은 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세상 풍조”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시대 정신, 문화, 유행, 대세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헛되고 악한 것에 마음을 뺏겨 허무함에 굴복하게 만드는 사상적, 문화적 세상 풍조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그런 세상 풍조, 정신들을 하나씩 심도 있게 다룰 기회를 갖도록 하고 이 시간에는 핵심적인 것만 살펴봅시다.
먼저 지난 시간에 죄를 회피하는 무신론을 다루면서 언급한 진화론에 대해 좀 더 살펴봅시다. 우리는 진화론을 생각하면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해 다양한 식물과 동물의 종류들로 나누어지고 발전되어왔다고 설명하는, 한 뿌리에서 나무의 모든 가지가 뻗어 나온 것처럼 모든 생물이 다양해졌다는 진화계통수 그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원숭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에렉투스,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점점 털이 빠지고 허리가 펴져 현대인의 모습이 되었다는 그림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화론에서 중요한 것은 그 아래 자리 잡은 사상, 태도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생명의 출현에 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듯 신적 존재가 개입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질서와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이라는 고등 지적 생명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이렇게 신비롭게 조화롭게 된 것, 우리 인간이 존재하게 된 것은 어떤 신적 존재의 계획, 의도된 조정, 그냥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어떤 목적도, 방향성도, 의미도 없이 지금의 질서와 아름다움과 조화가 이뤄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런 진화론자들의 확신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만큼이나 놀라운 믿음입니다.
진화론은 단지 과학 분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심리학과 사회학과 모든 사상과 제도와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진화론을 신뢰하는 사람들, 즉 다윈주의자들은 종교를 조롱하면서 신은 진짜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발전하기 전 인간들이 자연을 두려워할 때 만들어낸 원시적인 창작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윈주의자들은 마치 이런 태도를 드러냅니다. ‘오 나는 신을 믿을 만큼 순진하고 저급하지 않다. 나는 이 세상이 신 없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이 없어도 인간이 훌륭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나는 증명하겠다. 나는 종교를 가진 자들보다 더 생명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차별 당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여러 부조리들을 해결하겠다. 신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주지 않더라도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그러나 진화론에 기초해서 우월한 자들이 열등한 자들을 멸종시키고 그래서 우수한 유전자가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자연의 원리라고 여기는 것을 우생학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 독일 나치는 가장 진화된 민족이 게르만족이라고 믿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전쟁의 비극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님 없는 진화론은 결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바르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우리 시대의 세상 풍조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땅이나 노동력 같은 생산수단이나 재산을 모두 국가가 통제하고 결과로 얻은 부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평등을 목표로 합니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와 반대로 생산 요소와 생산 활동으로 얻은 부를 개인이 가질 자유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중국이나 북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자본주의입니다. 공산주의가 꿈꾸는 이상대로라면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과 갈등도 없을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 듯 공산주의는 많은 억압과 통제와 잔인한 학대가 만연합니다. 누가 봐도 공산주의는 악마적으로 보입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죄성과 이기심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런 것이 앞으로 예상되는 공평한 보상에 의해 사라질 수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인간의 죄성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 것은 그것이 진화론을 배경으로 이론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은 역사 속 계급과 불평등을 종교가 만들어냈고, 종교와 기득권자들을 없애버리면 인간은 공평해지고, 행복해지고, 인간성도 회복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이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따뜻함과 인간애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착각입니다. 인간의 죄에 대해 무지한 진화론에 근거한 공산주의는 그래서 결국 혁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무섭게 감시하고, 폭력으로 질서를 유지합니다. 신과 종교와 계급을 그렇게도 경멸한 그들이 결국 자신들의 체제를 종교화하고, 더 극심한 계급의 차별을 두고 자신들의 지도자인 수령을 신격화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산주의뿐 아니라 우리가 적응해서 살고 있는 자본주의 역시 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산주의가 인간의 죄성에 대해 무지하다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죄성을 부추깁니다. 이기심, 허영심들을 극대화시키고 발산시키도록 합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자본주의는 온통 상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별별 것들이 다 개인의 권리이고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 문제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이나 서비스를 돈을 주고 사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가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공산주의보다 더 나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점점 사람들을 불신앙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무서운 폭력으로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면 자본주의는 온갖 화려한 것과 쾌락과 호기심과 자기만족을 자극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의 신비를 자세히 관찰하며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게 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공산주의는 인간의 불평등한 현실에 문제 제기를 하고 성경이 말하는 차별과 억압이 없는 세상, 초대교회가 서로를 사랑하면 소유를 나눈 것을 소망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 자본주의는 각 개인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 성실하게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신 복을 시기하지 않고 자족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좋은 제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외면할 때 동일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것은 바로 그것들이 하나님과 참 종교를 무너뜨리려 해놓고 결국 인간을 신격화하고, 종교를 만들어냅니다. 힘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이용해 자신이 신이 되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은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합력해서 반하나님적인 세력을 드러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만 애굽에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애굽과 같은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출애굽 하려는 이스라엘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바로 왕처럼 이 세상은 모든 지식과 힘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반대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마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여력과 자원을 헛된 곳에 낭비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노예 삼고 있습니다. 시편 10편 4절은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사상과 유행과 문화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지만 여전히 세상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 세상 풍조를 분별하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것들에 저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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