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34 에베소서 2:14-22 (3)

따뜻한 진리 2024. 4. 28. 22:38

에베소서 2:14-22 (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어 사탄의 권세 아래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영원한 저주를 겪는 것이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 중 어떤 자들을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실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게 하셨습니다. 또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 의지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처음부터 그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고(5절), 하나님의 기업(14절)이 되었고, 교회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몸(23절)이 되었고, 함께 지어져 가는 살아있는 건축물(2:21)이 되었고, 하나님의 권속/가족(2:19)이 되었고, 하나님이 사시는 처소(2:22)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묘사한 이런 이미지들은 바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자신과 백성의 관계를 설명하신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혼인 잔치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가족처럼 함께 사시길 원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그 내용을 좀 더 생각해보고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 땅에서부터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봅시다.

 

     하나님 나라는 위대하고 견고한 왕국인 동시에 모든 구성원이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는 왕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면서 동시에 백성들을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친밀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나라들은 강하고 위대해지기 위해 그 나라나 지도자를 신격화하거나 이념을 종교화해서 국민들이 기꺼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도록 거짓된 의미를 부여합니다. 로마, 독일, 일본 같은 나라들의 과거를 생각해보십시오. 민족을 위해, 국가 전체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전쟁에 참여하라고 국민들을 설득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서 드러난 것은 악을 행하기 위한 선동이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역시 그런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의 일은 하나님 나라를 모방해서 악을 저지르는 사탄의 활동에 불과합니다. 세상 나라의 그런 시도들은 위대한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백성들은 행복을 누리지도, 구원을 얻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희생으로 강해진 나라가 오래도록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위대하고, 강하며, 영원합니다. 동시에 백성들이 진심으로 사랑받고 보호받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왕의 욕심과 권력을 위해 백성들이 고생하고 학대당하면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왕이신 하나님의 헌신으로 세워지는 나라, 성자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으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왕이 먼저 백성을 섬기고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오신 예수님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세상의 참 신이신 분, 왕이신 분이 우리와 같아지셔서 우리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르셨기에 우리는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세상 나라 왕은 그 백성이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지만 하나님 나라는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오히려 우리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와 가까워지려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과 우리 사이를 멀게 하는 죄를 처리하신 것입니다. 가까워지려고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죄인들에게 오셨습니다. 또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성자 예수님과 성령에게 붙들려 새사람 되고, 종말에 성부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는 이 구원 과정과 완성이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하시려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시고자 하기 때문에 우리는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누려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있을까요? 먼저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될 때 일하신 성령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도움을 주십니다. 자신이 누구이신지, 자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리시려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 기록된 것을 읽을 때 바르게 깨닫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 의지하며 읽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해 예배를 진실하고 진지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참석할 때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알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참여해야 합니다. 예배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인 줄 알고 참여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백성들이 감히 지성소에 근접할 수 없었고, 피흘림의 제사 없이는 예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과의 사이에 있는 거리, 장애물을 없애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쁨으로,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는 단지 우리의 문제 해결을 위해 방법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시려고 주신 은혜의 방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약한 우리, 세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고, 하나님께 마음을 쏟게 하시려고 우리를 다루십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에게 가까이 나오게 하시려고 고통도 주시고, 근심할만한 여러 어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리게, 가까이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찾게, 자기 앞에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곁에서 들으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독려하기 위해 기도에 관한 여러 내용들을 가르치지만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가 기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죄 많은 삶 때문에, 또 요즘 내가 기도를 안 하다가 뜬금없이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떤 것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마음을 주셨을 때 어떤 주저함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단지 필요한 것을 부탁하고 들어주는 관계가 아닌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단지 그런 관계가 아니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가 친밀해지는 방법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친밀한 관계를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고 구원하셨기에 우리의 마음을 내놓는 기도는 의무입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 아들이신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는 단지 정직하게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하기만 하면 됩니다. 성령께서는 그것을 도우십니다. 성령께서 기도를 도우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엄청난 기도제목을 막힘없이 쏟아내도록 도우시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와 친밀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 어떤 기도행위를 뜨겁게 신령하게 하는 것은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의 어떤 느낌, 뜨거움, 확신을 주실 수도 있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넘어 하나님은 우리 곁에 항상 계시고,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아이가 부모에 대한 감정이 어떠하든지 항상 염려하고, 돕고, 필요한 것들을 예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여기십니다. 그런 선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상태가 어떠하든, 그동안 기도 생활을 부끄럽지 않게 했느냐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친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집중된 기도를 하기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변덕스런 감정이 왜 그러한지 하나님께 털어놓고 물어야 하고, 내가 지금 이러한 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지,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지 하나님께 묻고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평소 말씀에서 그리고 주기도문을 통해서도 가르쳐주셨듯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선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이 땅의 현실 속에서부터 하나님과 가까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위해 창조하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이 땅에서부터 누려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