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관하여 (10) 시편 7:11-1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죄 때문에 우리 지정의와 양심의 기능은 심각하게 망가져 있습니다. 그 기능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선을 추구하지 않고 악을 추구하는 일에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의 비참함을 깨닫기 위해 죄가 우리 안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어떻게 우리를 부패하게 했는지를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이러한 죄인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계신가를 생각할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망칠 뿐 아니라 우리 밖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또한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교회들조차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잘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죄에 대한 진지한 회개 없이 쉽게 예수를 믿는다고 확신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안전하게 들어와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기적으로 죄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외면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기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부모의 감정 상태에는 관심도 없고, 단지 용돈만 받겠다는 자녀의 태도와 유사합니다. 또한 우리가 진노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진노, 분노가 자제력을 상실한 폭력이고, 못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진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인 사람의 진노와 다릅니다. 사람의 진노는 자기중심적이고, 치우친 판단, 충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아무리 타당한 분노를 내더라도 죄로 요염되어 있어서 화를 내고 나면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지 않습니다. 법정의 재판관처럼 하나님의 진노는 도덕적으로 옳은, 의로운 분노입니다. 창조 목적대로 사람은 하나님을 만족스러워하며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그것이 아닌 자기 숭배와 자기 사랑을 추구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은 개가 주인을 향해 무섭게 짖고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할 때 그 주인에게 생기는 마음, 또 나의 연인이나 배우자가 다른 상대와 사귀는 것을 알 때 나에게 생기는 마음보다 더 큰 실망과 분노를 하나님께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본성을 물려받은 모든 죄인들에게 진노를 품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외면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죄에 대해, 죄인에 대해 분노를 품고 계시다는 것을 처음부터 계속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했을 때 죽음으로 저주하셨고, 에덴에서 쫓아내셨고, 죄악이 가득한 노아시대의 사람들을 홍수로 심판하셨고, 바벨탑을 건설하여 자신들을 신격화하려는 자들을 흩으셨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셨고, 애굽을 10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진노를 드러내셨습니다.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자들을 심판하셨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들을 불뱀에 물려 죽게 하셨고, 사사시대에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에게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게 하셨고, 다윗이 하나님께서 시키지 않은 인구조사를 하자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백성 칠만 명을 죽이셨습니다. 이후에도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방금 말한 성경의 역사 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조금씩 보여주고 계십니다. 신약의 로마서와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진노를 많이 언급하는데 로마서 1장 18절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죄인의 상태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또 언젠가는 모든 진노를 나타내실 것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시간 속에서 자신의 진노를 드러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진노를 억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절제된 진노는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는 기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홍수심판 중에도 구원받는 노아의 가족이 있었고, 애굽에 내려진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이 구원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한 이방 족속들도 출애굽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는 과정에서 여러 환난을 당할 때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으심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농부 비유를 생각해봅시다. 포도원 주인이 수확한 것을 얻으려고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이 그들을 돌로 치고 죽였습니다. 주인이 다시 더 많은 종들을 보냈지만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마지막에 보내진 주인의 아들도 죽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악한 농부들이 당연히 진멸 당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비유에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들과 아들의 희생이라는 요소뿐 아니라 하나님이 진노를 참으신다는 것도 나타납니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당장 진노를 드러내시면서 심판하실 수 있지만 계속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영원하지 않고, 결국에는 진노가 쏟아 부어지는 심판이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진노를 쏟으실 때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7편 12,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죄인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죄악들을 행해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며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이 있어도 사람의 죄에 별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은 진노를 참고 계시는 것일 뿐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칼을 더욱 날카롭고 갈고 계시고, 활 시위를 더 당기고 계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진노를 완전히 쏟아 놓을 때가 닥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역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드러냅니다. 십자가는 분명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 때문에 자기 아들을 비참히 죽게 하시는데 하물며 자기를 거절하는 죄인들에게는 어떻게 하시겠냐는 경고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진노는 억제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 사람에 의해서도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경험하지만 하나님은 수많은 인격체들의 죄를 오랜 기간 참으시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라면 분노를 품고 며칠, 몇 달을 견디는 것이 어렵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참고 계십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하나님이 진노를 참지는 않으십니다. 그 진노는 언젠가 엄청난 크기로 죄인들을 덮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하나님이 하나도 무섭지 않고, 우리의 죄들을 그냥 넘어가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모르시거나, 아무렇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진노를 쏟으시는 심판의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손 안에 든 죄인들”이라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심판은 한 순간만 경험해도 무서운 일인데, 죄인은 그것을 영원히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지금 저수지에 담긴 엄청난 물과 같습니다. 갈수록 그 수위는 높아지고 물의 양이 너무 많아 흘려보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홍수를 막고 있는 손을 떼버리기라도 하시면 그 문은 바로 열릴 것이고 무시무시하게 엄청난 양의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의 물이 쏟아져나와 어마어마한 능력으로 여러분을 덮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무서운 화, 분노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또 두려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성을 잃은 범죄자입니까? 전쟁입니까? 전염병입니까? 질병입니까? 사고입니까? 그런 것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무섭고 두려운 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에게 가장 큰 고통과 괴로움을 일으키며 그 진노의 불은 무엇으로도 사그라지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인에게 진노를 품고 계시지만 아직 그 진노를 쏟으시는 것을 참으시고,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심판의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진노를 쏟으시기 전 우리는 유일한 피난처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죄에 대해 회개하며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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