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관하여 (12) 누가복음 13:24-2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반역하는 악한 죄인들은 지옥에 던져집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도록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적극적인 진노와 벌을 받게 됩니다. 지옥은 단지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존재하는 곳이므로 죄인들은 하나님께로 돌이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런 두려운 심판과 끔찍한 지옥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지옥을 비웃거나 반감을 품습니다. 지옥을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하거나 지옥은 부당한 곳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특히 지옥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자들은 사람이 짧은 기간 동안 죄를 지은 것 때문에 지옥에서 끝없이 영원한 징벌을 받는 것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냐며 반대를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지옥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결국 모든 인간을 다 구원하신다는 만인구원론을 주장하거나 죄인들은 존재가 사라진다는 영혼 멸절론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른 성도들은 성경이 말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원하고 두려운 지옥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주장해 왔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비록 이 세상에서 사는 짧은 시간 동안 죄짓는 것으로도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영원한 벌을 주시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 시간에는 그런 주장 중 가장 타당한 설명을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중세 신학자인 켄터베리의 안셀름이 사용한 표현이자 1700년대 미국의 청교도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 더 명료해진 표현으로써 ‘하나님이 무한한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지은 죄는 무한한 진노와 징벌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죄의 심각함과 무거움을 단지 피의자, 즉 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입장에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한한 존귀, 무한한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을 거절하고 모욕하는 죄인은 무한한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이 세상에서도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생명을 죽이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세균을 죽이는 것과 가족처럼 기르는 개를 죽인 죄가 다릅니다. 또 악한 범죄자를 죽인 죄와 한 나라의 왕을 죽인 죄는 엄연히 다르게 처리됩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 모든 생명은 다 존엄한 것이니 어떤 생명을 죽이든 똑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벌레를 죽여도 사형을 당하거나 반대로 사람을 죽여도 벌레를 죽인 정도로 가볍게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누가 피해를 입었는가에 따라 죄의 무거움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의 궁극적인 피해자인 하나님의 가치에 사람의 죄의 크기가 달린 것입니다. 영원한 가치와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을 거절하고, 진노를 일으킨 죄인은 영원한 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귀한 왕, 존귀한 무엇에 해를 끼친 것보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죄가 가장 큽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을 무시한 채 자기만족과 자랑을 일삼으며 산 죄인, 하나님이 그런 자신을 살리실 구원의 방법을 주셨는데도 거절하고 조롱하는 죄인은 참혹한 고통을 받는 것은 전혀 부당하지 않습니다.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무한한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지은 죄는 무한한 진노와 징벌을 요구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인생이라는 짧은 시간, 유한한 시간 동안 지은 죄 때문에 영원한 징벌을 받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일 역시 이 세상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 몇 분에 불과하지만 그 도둑은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 역시 몇 초, 몇 분, 몇 시간 안에 일어나지만 살인자는 수 년에서 수십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범죄자에 대한 형량이 낮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특수강도범에게 2만 년, 아동성범죄자에게 3만 년의 징역이 선고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죄를 저지른 시간과 비교가 안 되는 긴 시간 동안 벌 받는 일을 정의로운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범죄자의 드러난 죄 몇 개에 대해서도 세상의 법이나 사회는 그렇게 긴 시간의 벌을 내리는데, 드러나지 않은 죄는 셀 수 없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한 사람 인생 전체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다 아시고 판단하신다면 영원히 심판받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고, 실제로 죄짓는 것이 셀 수없이 많으니 하나님이 심판 때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다 드러내신다면 영원토록 지옥에서 심판받는 것은 얼마든지 정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같은 죄인인 인간들도 범죄자에 대해 긴 시간의 처벌을 요구하는데 하물며 완전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무한한 진노를 일으키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의 죄의 양이 유한할지라도 하나님은 충분히 무한한 진노를 품고 징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에 대해 영원히 진노하시는 하나님,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것은 하나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나라들이 자기 왕에게 어떤 모독도 허용하지 하는 것, 또 저 북한이 자기들 통치자의 이름을 함부로 대하는 자를 무섭게 다루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인간의 헛된 영광도 지키려 하는데 참된 영광과 존귀를 가지신 하나님을 무시하며 사는 것은 극악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옥을 부당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사람은 죄가 없었어도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해야 하는데 타락한 죄인은 하나님을 더 무서워해야 합니다. 선악과를 먹고 숨은 아담처럼, 시내산 아래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죽을 것 같다고 말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반응해야 합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을 비웃을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 천국은 행복한 곳이 될 수 없다는 기만적인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이미 대다수의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의 큰 고통을 알면서도 자기 행복을 잘도 누리기 때문입니다. 한쪽에서는 전쟁과 재난과 억압으로 죽어가는데 다른 쪽에서는 자기만족과 쾌락을 즐기는 일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구경하듯 보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쪽에서 지옥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한 쪽에서는 ‘여기가 천국이네’라는 말을 하는 우리 인간들이 나중에 지옥에 있을 자들을 걱정하고, 지옥이 천국의 기쁨을 방해할 것이라는 주제넘은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고통당하는 자들을 보면서도 행복을 추구하지만 진짜 천국에서는 하나님이 얼마나 옳으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신지를 완전히 알아 지옥을 정당하게 여길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악한 범죄자들에게 무거운 징벌을 내릴 때 국민들이 그것을 마땅한 일이고 선한 일이라고 공감하듯 성도들은 천국에서 선과 악에 대해 더 분명하게 각성하게 될 때 하나님의 존엄성을 해친 자들에게 내려지는 지옥의 형벌을 옳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진노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죄가 그리 큰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리 무서운 것이 아니라면, 지옥이 그리 두려워할 곳이 아니라면 평범한 구원자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 영원한 지옥을 일으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사람이시자 완전한 하나님이신 분, 무한한 가치를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셔야 하는 이유는 바로 죄인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지만 또한 두려워해야 하는 재판관이십니다. 죄인은 어서 속히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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