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완전한 말씀이신 그리스도 (요 1:1-3)

따뜻한 진리 2015. 1. 11. 21:32

요한복음 1:1-3, 1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처럼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다루기는 하지만 특별히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통찰과 가르침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고,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구원 받은 자의 고백입니다.

 

    사도요한은 그 이야기의 시작으로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말씀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구약 창세기의 시작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어떻게 그 일을 이루셨습니까? 바로 자신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없었던 것이 생겨나고, 존재와 물질과 법칙과 질서와 생명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우리가 늘 쉽게 내 뱉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라는 것의 존재와 기능에 대해 별로 놀라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은 매우 심오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늘 인식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문화권에나 말에 관한 속담이 있고, 철학자들도 인간의 언어에 대한 깊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말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구별시키는 중요한 차이점으로서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 닮게 창조하신 분명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 자체에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말은 어떤 대상을 움직일 능력이 없습니다. 물론 내 부탁이나 명령을 듣고 실행해 줄 사람이 있으면 말에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어떤 말이 누군가의 마음과 기억에 파고들었을 때 그것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말 자체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 능력과 동일합니다.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말씀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의지의 실행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말은 헛 나올 수도 있고, 책임지지 못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신대로 모든 것이 생겨났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말은 완전하게 다른 존재에게 전달될 수가 없습니다. 완전하게 성취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세상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창조된 자신을 보아 그 말씀의 위대성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뜻하신 대로, 말씀하신 그대로 이뤄지게 하시는 그분 자신이 우리의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증거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를 본문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1절과 2절에서 반복되는 이 말씀이 태초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첫째,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안 계시다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생겨나신 분이 아니라 이미 창조 때부터, 그 이전 영원부터 성자 예수님은 성부와 함께 계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함께 하셨고, 창조도 함께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은 이 세상이 창조될 때 성부 하나님께서 원하신 바를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아시고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말씀이 그냥 우주에 울려 퍼진 신비로운 에너지로서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신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 자신은 삼위일체 중의 한 분이신 성자 예수님이신데 그분은 바로 성부 하나님의 그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생각과 목적과 능력이 그대로, 어떤 왜곡이나 변동 없이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실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오늘 본문에서 그렇게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말씀 자체로서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자신이 창조한 세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왜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자기가 지은 세상을 책임지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로 인해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책임지려고 오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늘 강조하지만 어떤 인간도 자신이 내 뱉은 말을 모두 책임지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은 무책임합니다. 말한 대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돼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무능할 뿐만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책임질 수 없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거짓말이고 변심이고, 사기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간은 서로의 무책임함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작은 일부터 큰 범죄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무능함 때문이든 고의적이든 책임을 지지 못하고,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말할 능력을 주신 하나님은 그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완전하게 보이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완전하게 책임을 지시는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우리 인간들을 완전히 책임지시려고 우리처럼 되셨습니다. 창조하신 말씀은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말씀이 되었습니다. 창조 때 세상이라는 대상을 있게 하신 그 말씀은 이제 자신이 말씀을 듣는 대상이 되어 스스로 세상 가운데 있게 되셨습니다. 피조물에게 명령하시던 분이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어떤 존재도 할 수 없는 완전한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피조물인 우리를 살리려고 오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위해 죽으려 오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완전히 책임지시는 사랑을 보이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완전함입니다. 완전한 계시이고, 완전한 능력이고, 완전한 책임이고, 완전한 생명이고,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줄 수 없고, 이 세상의 숨겨진 진실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의 비밀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이 이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이고, 그분이 우리를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은혜이시고, 진리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신실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분이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민수기 23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말씀이십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하지 마십시오.